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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로윈은 적어도 헌터들에겐 휴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 해 중 가장 바쁜 시기에 속한다면 모를까.

 그 증거로 현재, 샘은 오전부터 쉐이프쉬프터 헌팅을 끝내곤 부족한 주술 재료들을 다른 헌터에게서 건네받기 위해 할로윈 축제가 한창인 낯선 동네 구석에 서 있었다. 주홍빛 조명 아래 시끌벅적하게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조용히 서 있는 덩치 큰 남성은 꽤 특이했지만,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 서 있기 때문인지 그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샘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오전의 헌팅은 어렵지 않은 난이도였지만 재수 없게 옆구리를 칼로 베이는 바람에 썩 좋은 컨디션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중상 정도는 아니어도 움직일 때마다 따끔거리는 게 꽤 거슬렸고, 이는 샘이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헌터 분은 언제 오시려나, 하며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자 분수대 위쪽에서 폭죽이 터졌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흩뿌려진 물감처럼 밤하늘을 뒤덮었다. 헤이즐넛 눈동자는 그것을 무감하게 눈에 담았다.

 10월 31일, 할로윈. 흔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진짜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날은 아니지만 그만한 기괴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날이긴 했다. 띵즈들도 할로윈에는 들뜬 마음이 들기라도 하는지 유독 그날 일을 벌이고 다니는 탓이었다. 자신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한쪽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샘이 식은 커피를 마저 들이켜며 주위를 슥 둘러봤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유령과 같은 분장을 한 사람들이 웃으며 저희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제가 알고 있는 괴물들의 외형보다 훨씬 순하다 못해 많이 왜곡되어 있는 코스튬들을 보며 샘이 바닥을 보인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하긴, 사람들이 자신들을 따라 하며 코스프레를 하는데 분위기에 휩쓸리는 게 이상한 건 아니겠다. 그들에게는 이 상황이 얼마나 웃겨 보이겠는가. 목에 구멍을 뚫어 피를 빨아들이는 날카로운 뱀파이어의 이빨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웃느라 벌어진 입의 안쪽에 끼워졌고, 벽을 부술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힘으로 사람의 심장을 꿰뚫어 비릿한 피비린내가 배인 늑대인간의 발톱은 부드러운 털장갑에 삐죽하게 돋아나 장난감으로 전락했다. 제가 봐도 하나의 블랙코미디처럼 보이는데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비웃음거리일지 쉽게 상상이 갔다.

 그러니 할로윈을 좋아하는 헌터가 있을 리 없었다. 샘도 그중 하나였고. 뭐, 싫어하는 다른 이유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축제 분위기에 초를 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 그저 입을 다물고 지켜만 볼 뿐이었다. 형이나 캐스랑 같이 왔으면 즐길 수 있었을지도. 문득 머릿속에 두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딘은 오전에 샘과 함께 헌팅을 마친 후 다른 볼일을 보러 갔고, 카스티엘은 잠시 천국에 들린 상태였기에 그는 혼자였다. 원래도 홀로 축제를 즐기는 타입은 아닌 샘이 지금의 상황을 즐길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에는 사탕 바구니가 들려있었고 샘의 옆구리에는 셔츠 아래 감춰진 작은 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달달한 간식 냄새가 코끝을 찔렀지만 샘의 소매 안쪽에 묻은 차마 지우지 못한 핏자국에선 희미한 피비린내가 났다. 샘이 불편한 몸을 벽에 기댔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지만 좋지도 않았다. 그저 집에 가서 쉬고 싶을 뿐이었다. 정말, 그게 다였다.

 그런 샘의 표정이 남이 보기에도 그닥 좋아 보이지 않았던가, 바로 옆 가판대에서 할로윈 호박 모양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샘을 흘깃 쳐다봤다. 턱을 괴고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그가 얼굴에 미소를 띤 다른 사람들을 한번 훑곤 샘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 청년. 할로윈을 별로 안 좋아하나 보지?”

 “···네?”

 “여기서 죽을상인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댁밖에 없다고.”

 

 샘이 남자를 향해 돌아간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멋쩍게 웃었다. 그 정도로 내 표정이 안 좋았나. 무표정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제 컨디션이 별로인 듯했다. 남한테도 기분 상태가 훤히 보일 정도면.

 

 “좋아하는 편은 아니죠.”

 “그런데 왜 여기에 나와 있는 거야? 기분만 더 안 좋아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제가 신경 쓰이게 했나요?”

 “아무래도 전부 웃고 있는데 한 명만 안 웃고 있으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지. 사탕이라도 먹을 텐가?”

 

 남자가 사탕 박스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준비한 것인지 귀여운 호박 모양의 비닐로 포장된 사탕이었다. 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단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요. 그렇게 거절하자 남자는 사탕을 거두곤 씩 웃었다. 마치 다루기 어려운 아이를 보는 듯한 미소였다. 싫어하는 게 많구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는 말에 순간 샘이 삐끗했다. ···애 취급이라는 거, 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선 상당히 오랜만에 받아보는 것 같다. 아무래도 190cm가 넘는 성인 남성이 어린 취급을 받을 일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할로윈 굿즈를 사기 위해 가판대로 몰리자 그들의 대화는 자연스레 끊겼다. 샘은 혹여나 제 존재가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가판대에서 슬쩍 멀어졌다. 그 움직임을 떠나려는 행동으로 이해했는지, 남자는 물건을 고르는 아이들에게서 잠시 시선을 돌려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속삭이듯 하는 말은 작은 목소리였지만 헌터의 귀에는 명확하게 들렸다.

 

 “조심해. 오늘은 죽은 것들이 돌아오는 날이니까.”

 

 그 말에 샘은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하는지 몰랐다. 상대도 답을 기대하진 않았는지 고개를 돌리곤 제 할 일을 이어갔다. 죽은 것들이 돌아온다라. 헌터에겐 낯설지 않은 주제다. 그러나 오늘은 할로윈이고, 저 말을 한 상대가 그저 일반인임을 생각하면 큰 의미를 담아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가볍게 생각하며 넘겼다. 뭐, 사실 죽은 것들은 굳이 할로윈이 아니더라도 1년 365일 언제든 돌아올 수 있지만. 그건 저희 세계의 일이니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하늘은 어둑어둑하고 저녁 바람이 슬슬 불어왔다. 샘은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8:00pm. 드디어 약속된 그 시각이었다. 나무 그늘 아래의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인물들을 관찰했다. 일반인이 아닌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즐거운 축제 속에서 저처럼 웃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아 헤매길 30초.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샘은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느꼈다. 본능이 감지한 위치를 향해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 광대와 눈을 마주했다.

 

 “HAPPY HALLOWEEN!”

 

 새하얀 얼굴, 진한 눈썹, 우스꽝스러운 복장, 빨간 코와 폭탄을 맞은 듯한 빨간 머리카락, 피처럼 진한 색의 입술. 익숙한 분장을 한 남성의 목에서 발랄하지만 반갑지는 않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사람들 틈을 헤집고 뚜렷하게 들려왔다. 정확히 샘과 눈을 마주친 상대는 누가 봐도 광대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손잡이에 무지개색의 풍선이 달린 실을 매어둔, 작은 광대 인형들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왼팔에 걸어두고 있던 그는 갑작스레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고는 그 상태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샘 윈체스터가 있는 방향으로.

 갈색 운동화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아니, 아니, 아니, 나한테 오지 마. 다급한 외침은 목구멍 너머로 삼켜졌다. 꾹 다물린 입술은 한마디 비명조차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듯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대마저 굳은 느낌이었다. 할로윈 축제 때 광대 분장을 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지만 저와 직접 맞닥뜨린다면 또 의미가 달랐다. 마땅한 대처법이 떠오르지 않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거리를 벌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뒤로 물러나는 샘의 걸음보다 광대의 발걸음이 훨씬 빨랐고, 결국 둘 사이의 거리가 1m 사이로 좁혀지자 샘이 숨을 들이켰다. 이 이상의 접근이라도 막기 위해 굳게 닫힌 입술을 강제로 열려는 그 순간―

 

 “헌터죠?”

 

 뚝, 뒷걸음질 치던 발이 멈췄다. 턱에 들어간 힘이 풀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근육이 미세하지만 풀어지고, 두 눈은 멍청하게 깜빡거렸다. 그 반응에 상대는 확신을 얻었는지 씩 웃었다. 그러자 기괴한 분장의 얼굴에 좀 인간성이란 게 보였다. 그래, 상대는 그저 광대 분장을 한 인간이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가 꺼낸 주제를 보면 샘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일 확률도 높았다. 대화의 필요성을 느낀 샘이 시선을 마주하기 위해 겨우 정면을 바라봤지만 ‘나 광대요’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얼굴이 너무도 선명해 다시 데구르르 눈을 굴렸다. 남자는 그런 샘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태평하게 말을 걸어왔다.

 

 “유명인을 뵙네요! 윈체스터 맞죠? 동생 쪽.”

 “···네. 그, 혹시 오늘 만나기로 한 분인가요?”

 “옙. 하하, 이런 상태로 나타나서 놀랐나요? 제가 최근에 이 지역에서 수배가 걸렸거든요. 혹시나 해서 분장 좀 했어요. 축제가 열리는 곳에는 경찰들이 많이 돌아다니잖아요.”

 

 그으렇군요. 샘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필이면 수많은 분장 중에서 광대 분장이라니, 운도 참 없었다. 오늘은 샘 윈체스터 불운의 날인 건가. 남자는 자기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윈체스터에 대해 들은 소문에 대한 묻지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재잘댔다. 샘은 그 모든 말에 하하 웃으며 대강 넘겼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불편한 마음은 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하고 있는 분장이 좀 그럴 뿐이지 말하는 건 평범한 사람이었다.

 조금 기다려 주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끝냈는지 남자는 뒤늦게 바구니를 뒤적거렸다. 광대 인형만 담겨있는 줄 알았던 바구니의 바닥에서 작은 나무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탁하신 거 여기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상자를 품에 들이밀자 샘은 그제야 안심했다. 이제 이걸 가지고 벙커로 돌아가기만 하면 오늘 하루가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샘에게 줄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광대 인형들 중에서 가장 큰 인형을 골라 손에 쥔 남자가 갑자기 그걸 샘에게 건넸다. 입이 떡 벌어지고 손사래 치기 위한 손이 반사적으로 위로 올라왔지만 그는 거절을 위해 올라온 손에 인형을 쥐여주었다. 피에 적셔진 것처럼 새빨간 입술이 위로 호선을 그렸다. 이상하게도, 다 알고서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미소였다.

 

 “그리고 이건 선물이에요. 애들한테 나눠주고 있었거든요. 당신도 하나 가져요.”

 “아니 저는 괜찮,”

 “그럼 즐거운 할로윈 보내요, 샘!”

 

 초면부터 이렇게 마음대로 구는 사람을 만난 게 얼마 만이었던가? 샘이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 사이에 남자는 윙크까지 하곤 어느새 저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샘이 황당해했다. 붙잡기엔 이미 늦은 탓에 샘이 제 왼쪽 손에 쥐어진 인형을 천천히 내려다봤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오마이갓···. 이 세계의 신이 어떤 작자임을 잘 알고 있는 샘이었지만, 그런 신이라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토록 싫어하는 광대가 제 손에 들려있었다.

 일단 볼일은 끝난 샘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째 무거워진 발을 끌며 샘은 바로 뒤쪽의 어둑한 뒷골목에 들어섰다. 아까까지만 해도 켜져 있던 전등은 누가 공이라도 던진 건지 그새 깨져있었고, 따라서 골목은 딱 으스스하다고 느낄 정도로만 어두웠다. 그런 어둠에 익숙한 샘은 아무렇지 않게 골목을 걸어가다 어느 초록색 쓰레기통 앞에 멈춰 섰다. 검은 비닐봉지가 가득 담긴 일반 쓰레기통은 작은 광대 인형 하나 추가한다고 해서 티도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샘이 다시 인형을 내려다봤다. 새빨간 눈과 마주쳤다. 샘은 또 신을 찾을 뻔했다.

 역시 안 되겠다. 숨을 후 내뱉은 샘이 광대 인형을 쓰레기통 뚜껑 위에 올려놓았다. 최소한의 양심으로 쓰레기통 안에 던져 넣진 않았다. 파란색 뚜껑에 편하게 앉아 자신을 노려보는 인형의 눈이 전등 빛을 받아 반짝였다. 선물 받은 걸 버리는 건 좀 그렇지만··· 이걸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쓸모없는 건 둘째치고 벙커 안에 광대를 들인다? 직설적으로 말해 용납할 수 없었다. 눈에 안 보이게 창고에 처박아 둔다고 해도 존재를 인식한 이상 신경이 쓰일 것이다. 그러니 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형이 제 손을 떠나자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샘이 얌전히―당연하다, 인형이니까―앉아있는 인형을 힐끔 바라보곤 뒤를 돌아 골목을 벗어났다. 들어올 때와는 달리 가벼워진 발걸음이었다.

 몇 분 더 걸어 렌트한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한 샘이 차에 올라탔다. 오늘 하루 타기 위해 빌린 거라 익숙하지 않은 시트 냄새가 나는 앞좌석에 앉은 샘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키를 꽂는 곳에 꽂았다. 차 키를 한 바퀴 돌리자 시동이 걸릴···뻔했지만 바람 빠지듯 걸리지 않았다. 바로 이어서 한 번 더 시도해 봐도 똑같았다. 고개를 숙여 열쇠 구멍을 슥 살펴본 샘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몇 번 더 거칠게 열쇠를 돌렸다. 그제야 차는 힘없는 소리를 내며 엔진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뭔가 찝찝했지만 샘은 운전대를 잡고 축제를 즐기는 중인 사람들 옆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영 시원찮은 출발이었다.

 

**

 

 할로윈의 늦은 저녁, 띄엄띄엄 설치된 가로등 아래 어두운 도로 위를 회색 승용차 한 대가 달린다. 아무 음악이나 라디오도 틀어져 있지 않은 차 안은 고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으며, 그런 환경을 만들어 낸 당사자는 그저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임팔라가 아닌 다른 차를 타는 게 얼마 만인지. 생각해 보면 혼자 운전을 하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인 것 같았다. 임팔라를 탄다고 해도 항상 운전은 딘이 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운전 실력이 녹슬거나 한 건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탄 게 분명한 운전대를 잡는 게 익숙한 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당장 오늘만 해도 딘과 제가 들러야 할 곳이 정반대의 위치에 있지만 않았더라도 차를 렌트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어쩐지 딘이 시끄럽게 틀어놓는 락 음악이 조금이나마 그리워지는 날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라곤 암흑과 나무들뿐이었으며 산길에 들어섰을 때부터는 가로등도 없어 빛이라곤 제 자동차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가 전부였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산길의 도로는 포장 상태가 영 엉망이었는데, 거기다 먼저 지나간 트럭이 낙하물이라도 흘렸는지 그 위를 지나갈 때마다 차가 덜컹거렸다. 샘은 불편한 승차감을 신경 쓰지 않으려 하며 운전을 이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쿵 하며 차가 크게 덜컹였다. 샘이 반사적으로 거세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 순식간에 도로는 고요해졌고, 찾아온 정적이 소름 끼치게 서늘했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샘은 답지 않게 겨우 흔들렸을 뿐인 충격에 놀라 굳어 있었다. 왜냐하면―

 차가 덜컹일 때 들려온 짧은 비명 소리가 너무나도 명백하게 들렸기 때문에.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사람을··· 치었나? 하지만 샘은 제대로 전방 주시를 하고 있었다. 최소한 앞이나 옆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오지 않았음은 분명했다. 또한 차는 위아래로 덜컹거리기만 했지 무언가와 부딪히는 소리를 내진 않았다. 그렇다면 도로 위에 쓰러져있는 사람을 제가 못 보고 밟았을 가능성은? 그런 실수를 했을 가능성은 낮았지만, 지금 제 상태가 썩 좋지 않으니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바짝 긴장한 샘이 안전벨트를 풀고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만약 사람을 밟은 게 맞다면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했다. 여기서부터 병원까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샘은 바퀴 밑에서 피투성이 사람을 발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앞바퀴 쪽을 훑어봤을 때 아무 신체 부위도 보이지 않자 샘은 안심했다. 적어도 사람을 친 건 아니었다. 대신 차 아래를 더 자세히 살펴보던 그는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걸 목격했다. 눈을 크게 뜬 샘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듯 바퀴 뒷부분을 쳐다보다가 허리를 숙여 밑에 깔린 것을 집어 올렸다. 차로 한번 밟힌 탓에 배가 터져 옆구리로 튀어나온 솜 몇 덩어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졌다. ···몇십 분 전에 선물로 받았던 그 광대 인형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큰 무언가를 밟은 것은 분명했다. 작은 낙하물이나 소동물 같은 건 차를 그 정도로 흔들리게 만들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보다 훨씬 작고 연약한 인형을 밟았다고 그렇게 덜컹거렸다고? 그럼 비명 소리는? 아니, 애초에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혼란을 정리한 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소름 끼치다고 생각하고 넘길지도 모르겠지만, 샘은 헌터였다. 그는 사소한 기현상 하나도 어떠한 인간 외적의 존재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알았다.

 차가 멈춰 선 곳 바로 옆에는 잔잔하게 흐르는 계곡이 있었고, 샘은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만약 저곳에 이 인형을 버렸는데도 다시 나타난다면 그건 제 직업과 관련된 일이 맞음이 확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일은 그저 우연과 착각의 집합체길 바랐다. 할로윈과 광대의 조합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샘이 최대한 광대 인형에게서 얼굴을 멀리 떨어뜨리고는 대강 겉을 훑어봤다. 그 후 어둠이 내려앉은 계곡에 인형을 던졌다. 인형은 물속으로 풍덩 가라앉더니 이내 다시 떠올라 수면 위를 둥둥 떠다녔다. 물에 빠졌으면서도 저와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는 광대 인형을 외면하고 샘은 차에 올라탔다. 핸들을 잡은 샘이 액셀을 밟으려다 제 손톱에 끼어있는 빨간 머리카락을 보고는 표정을 구기며 탈탈탈 털어냈다. ···뭔가 불길한 기분이 떨쳐지질 않았다.

 그렇게 또 몇 분이 지났을까, 답답한 산길을 벗어난 샘이 넓은 평지로 나왔다. 똑같이 밖은 어두웠지만 탁 트인 공간에 나오자 마음은 좀 편해지는 기분에 샘이 창문을 내렸다. 시원한 밤바람이 상쾌하게 피부에 와닿았다. 뻐근하게 굳은 어깨 근육을 풀며 편하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한 채로 운전을 하고 있던 듯했다. 이제 나이도 먹었는데 언제쯤 광대를 덜 무서워하게 될지.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세상의 어떤 추악하고 잔혹한 존재를 맞닥뜨려도 광대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샘은 저를 해칠 생각 없는 광대와 삼십 분 동안 마주 앉아 티타임 가지기와 혼자서 뱀파이어 둥지 소탕하기 두 개의 선택지 중에서 후자를 택할 유일한 헌터였다.

 그런 여러 잡다한 생각이 이어지는데, 샘의 건너편에서 빛 두 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다른 차였다. 빛들이 점점 제게 가까워지자 샘은 상향등을 껐다. 그러나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는 상향등을 끄지 않았다. 눈이 부시자 자동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밤의 도로 위에선 흔한 상황이라 별말 없이 그냥 지나가려는데, 그 차가 옆을 지나감과 동시에 반쯤 열린 창문으로 갑작스레 물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반대편의 차가 물웅덩이를 밟고 간 것이었다. 졸지에 물벼락을 맞게 된 샘이 데자뷰처럼 세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예고 없는 멈춤에 몸이 앞으로 쏠리며 꽉 졸린 안전벨트가 복부를 압박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안전벨트가 상처 부위 위를 짓누른 탓에 겨우 아문 상처까지 터져버렸다. 옆구리가 진득하게 젖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샘이 이를 악물었다.

 

 “···망할······.”

 

 수많은 욕들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애써 참아냈다. 어떻게 재수 없는 일이 이렇게나 겹쳐서 일어난단 말인가? 힘겹게 안전벨트를 풀어낸 샘이 차에서 내렸지만 이미 반대편 차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간 후였다. 정말이지 욕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최근에는 이 정도로 짜증이 치밀어오를 일이 없었는데. 물에 젖은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곤 옆구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깨끗한 손에 피가 묻어 나왔지만 원래 큰 상처가 아니었던 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샘이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다시 내뱉었다. 짜증이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오자 이제는 피곤해졌다.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일단 샘은 응급처치를 하기로 했다. 슬금슬금 새어 나오는 피가 알아서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건과 붕대를 어디 뒀더라. 아마 헌팅이 끝나고 글로브박스에 대충 넣어뒀던 것 같았다. 샘이 조수석으로 걸어가 오늘만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조수석에는 축축하게 젖은 광대 인형이 앉아있었다.

 

 “H-ell-o.”

 

 말을 걸어오는 모양새가 퍽 자연스러워, 샘은 순간 제가 조수석에 동행인을 태웠던가 생각했다. 저를 향해 고개를 꺾은 채 미소 짓고 있는 광대 인형은 온몸이 젖어 들어간 상태였다. 눈을 표현한 새빨간 단추는 실밥이 풀려 겨우 얼굴에 매달려 있었음에도 정확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구리에서 터져 나온 솜뭉치가 물에 젖어 묵직해졌는지 얇은 한쪽 팔로는 솜뭉치를 받치고 있었고,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람 같아 소름이 끼쳤다.

 

 “···정체가 뭐야?”

 

 샘이 주먹을 꾹 쥐고는 애써 위협적인 눈빛으로 인형을 노려봤다. 인형은 말이 없었다. 빨갛게 찢어진 채 부드럽게 움직이는 입을 본 건 네 착각이라는 듯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샘은 아까 전 들었던 비명소리와 제게 말을 걸었던 목소리가 같은 존재의 것이라는 걸 듣자마자 알았다. 저 인형은 뻔뻔하게도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다. 주술인가? 아니면 띵즈? 어느 쪽이든 초자연적인 일임은 분명했다. 샘이 바라지 않던 끔찍한 일이 확실해진 것이었다.

 제게 따라붙는 것만 같은 시선을 떨쳐낸 샘이 트렁크에서 소금과 기름을 꺼냈다. 오늘 낮에 헌팅할 때 사용한 헌팅 도구들 중 남은 것들이었다. 그는 이어서 더러운 것을 잡듯 광대 인형의 팔만 살짝 잡아 조수석에서 빼냈다. 딘이 봤다면 놀려댔을 법한 구겨진 표정이었으나 다행히―정말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딘은 여기 없었다. 샘은 어두컴컴한 도로 옆 공터에 인형을 툭 던지곤 소금을 탈탈 뿌렸다. 너무 불이 커지면 안 되기 때문에 기름은 조금만 부었다. 마지막으로 성냥을 꺼내 불꽃을 일으키자 일렁이는 불길 너머로 여전히 저를 바라보고 있는 인형이 보였다. 샘은 망설임 없이 성냥을 인형에게 던졌다. 흙바닥 위에서 화려한 불꽃이 일었다.

 인형은 작았고 불길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물에 젖은 탓에 타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그러나 샘은 끝까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더 철저하게 처리하고 싶었지만, 이 차는 임팔라가 아니라 트렁크에 헌팅 도구들이 얼마 없어 이게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눈앞에서 징그러운 인형이 타들어 가고 있자 조금 진정된 샘이 제게 이 인형을 넘겨주었던 헌터를 떠올렸다. 그는 분명 거스가 직접 소개해 준 믿을만한 헌터였다. 비록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지만 신뢰하는 자의 보증은 그 무게가 큰 법이다. 하지만 샘은 같은 헌터들에게 살해당한 경험이 있었고, 헌터라고 해서 저를 노리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은 언제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는 거니까. 그 사람이 나한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건가. 아니, 애초에 그 사람이 내가 만나기로 했던 그 헌터는 맞나? 끝도 없이 생겨나는 의심에 샘이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간단한 확인이라도 해볼 걸 그랬다.

 터져 나오듯 피어오르던 불의 화력이 점차 약해지고 인형의 형체가 처음과 확연히 달라졌을 때서야 샘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젖은 얼굴은 대충 티슈로 닦아내고 글로브박스에 들어있던 예비용 붕대를 허리에 감았다. 피와 물로 적셔진 셔츠가 찝찝했지만 여기서 집까지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괜찮았다. 대신 샘은 연한 회색의 안전벨트에 선명하게 스며든 핏자국을 어떻게 지울지나 고민했다. 괜히 의심받아 경찰의 신고를 받고 귀찮아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어차피 가명으로 빌린 차라 꼬리가 밟히지는 않겠지만, 세상에는 혹시 모른다는 게 있는 법이니까.

 대강 뒤처리를 끝낸 샘이 다시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 창문을 통해 힐끔 불꽃이 꺼져가는 쪽을 바라보자 광대의 형태를 잃은 인형이 힘없이 타닥타닥 타고 있었다. 음, 광대 같아 보이지 않으니까 이제 좀 괜찮은 것 같긴 했다. 샘은 저도 모르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출발시켰다. 아무래도 집에 가서 저와 거래했던 그 헌터에 대해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역시 할로윈은 쉴 틈이 없었다.

 

 또다시 시간은 흘러, 저녁을 벗어난 완전한 밤.

 여전히 차는 밤하늘 아래를 달리는 중이다. 오늘만 이 차에 몇 번이나 오르내린 샘이 사이드미러를 쳐다보고 정면을 바라보길 반복했다. 아까 전에는 거의 삼십 분 간격으로 인형이 나타났었는데, 지금은 한 시간이 훌쩍 넘었음에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 귀신 들린 것 같던 인형은 완전히 소멸한 건가. 정확히 어떤 종류의 현상인지 모르니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심각한 수준의 무언가는 아니었던 것 같으니 불로 태우는 걸로도 충분했을지도 몰랐다. 설령 충분하지 않았더라도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데 뭘 어쩌겠나. 상대가 광대인 탓에 샘은 답지 않게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때,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시선을 내려 계기판을 확인하자 엔진 경고등이 빨간색으로 켜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 스멀스멀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이어서 보닛에서 연기가 터져 나옴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불은 누가 기름이라도 부은 것처럼 빠른 속도로 커져갔다. 당황한 샘은 온몸을 덮치는 열기에 급하게 차를 갓길에 세우고 내렸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지나가는 차는 없었고, 당장 가지고 있는 소화 약제도 없었다. 결국 샘은 거래할 때 받았던 주술 재료 상자와 중요한 헌팅 도구 몇 개만 꺼내 들고 차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엔진에서는 펑, 펑 터지는 소리가 났다. 짧은 시간 안에 차는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뻔한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샘은 허탈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미치겠네 진짜.”

 

 오늘 진짜 뭔 날인가? 혹시 누군가가 오늘 하루 제 운을 다 빼앗아 가 최악의 하루를 선사한 게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그런 주술이나 물건의 종류는 꽤 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땅을 뚫고 내려갈 듯한 한숨을 내쉬며 샘이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질끈 감았다. 멀쩡했던 차마저 이렇게 되니 환장할 것 같았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벙커에 거의 다 도착한 상태라 걸어서 집까지 갈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 갈 수는 있었다. 비록 렌트한 차는 다시 돌려줄 수 없게 되었지만. 안전벨트에 묻은 핏자국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 화려하게 불타는 차는 머지않아 전소할 것 같았고, 샘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발을 뗐다. 피곤함이 묻어나는 발걸음이었다.

 달빛이 비추는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몇 번이고 차를 타고 지나간 적 있는 도로였지만 걸어서 지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벌레 울음소리 외에는 사람 하나의 발걸음 소리만 들려왔고, 옆구리는 욱신거렸으며 물이 젖은 상의는 밤바람과 맞부딪혀 차갑게 식어갔다. 양쪽 손에는 나무 상자와 헌팅 도구들이 담긴 천 보따리를 든 채 터벅터벅 길을 걷는 뒷모습이 퍽 애처로워 보였으나 불쌍한 그를 히치하이킹해 주는 차는 없었다. 지나가는 차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있었어도 샘을 태워주지 않을 확률이 높긴 했다. 피 묻은 셔츠를 입고 수상한 상자와 보따리를 들고 있는 정체 모를 성인 남성을 한밤중에 태워줄 차는 없다시피 했으니까. 오히려 신고나 안 당하면 다행이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27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연락이 와있진 않았다. 늦게 돌아와서 걱정 받을만한 시간은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샘은 잠깐 딘에게 전화해서 태우러 오라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이 어두컴컴한 길에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 그냥 걸어서 집에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래서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의도치 않은 밤 산책을 하게 된 샘은 오늘 하루를 곱씹어 보곤 역시 할로윈은 저와 안 맞는다는 생각이나 했다. 내년 할로윈에는 정말 집에만 있을 것이다. 과연 그가 바라는 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짐은 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한지 삼십분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드디어 벙커의 모습이 점차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야 이 길고 험한 하루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벙커의 앞에는 천천히 들어서는 임팔라가 있었는데, 원래라면 샘이 딘보다 빨리 도착해야 했지만 중간에 일이 하도 많이 일어난 탓에 동시에 도착한 듯했다. 딘도 샘을 발견했는지 벙커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차를 멈춰 세우더니 내려서 샘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샘!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몸에 힘이 쫙 풀린 샘이 힘없이 웃었다. 한순간에 지옥 같은 곳에서 안전한 곳으로 넘어온 기분이었다.

 

 “뭐야 너 왜 이렇게 늦게 와? 넌 가까운 곳에 갔다 왔으면서. 상태는 왜 그래? 차는?”

 “형 나 진짜··· 많은 일이 있었어···.”

 “무슨 일? 아니, 상처는 왜 터진 거야? 누구랑 싸웠어?”

 

 딘이 당혹과 걱정 담은 표정으로 샘의 몸 곳곳을 살폈다.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이 쇄도함에도 샘은 그저 해탈한 미소만 입가에 걸친 채 딘에게 나무 상자를 내밀었다.

 

 “말하자면 기니까 들어가서 얘기해 줄게. 이건 오늘 받기로 한 물건.”

 “···어떻게 이건 잘 챙겨왔네.”

 “이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런 일들을 겪어놓고 목적한 것마저 챙겨오지 못했다면 정말 최악의 하루가 됐을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할로윈의 악몽을 생으로 겪고 왔다는 거니까. 딘은 너덜너덜해진 꼴으로 이젠 괜찮다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 동생을 보며 떨떠름하게 건네지는 상자를 받았다. 허 참···. 상자를 받고서도 여전히 샘을 힐긋대며 딘이 뚜껑을 열었다. 별 감흥 없이 익숙한 내용물을 살피던 그가 무언가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이건 뭐야, 인형인가? 완전 다 타서 너덜거리는데.”

 

 입꼬리가 내려가고 얼굴 근육이 굳었다. 샘은 제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인형 아니야? 저주 인형 같은 거. 근데 이런 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왜 여기―”

 

 딘이 상자 속에서 익숙한 덩어리를 들어 올렸다. 아니길 바랐지만 제가 아는 그것임이 분명한 것을 태연하게 집어 올린 딘이 의문스럽게 인형을 관찰했다. 그때, 완전히 타버린 탓에 달랑거리며 몸통과 겨우 붙어있던 목이 뚝 하고 떨어졌다. 딘이 제 손에 들린 목 없는 새까만 인형을 한번, 바닥을 굴러다니는 머리통을 한번 쳐다봤다. 그가 바보같이 눈을 깜빡였다.

 

 “어··· 이거 중요한 거 아니겠지?”

 

 딘이 곤란한 상황인가 가늠하는 표정으로 샘을 슬쩍 바라봤다. 하지만 샘은 대답해 줄 정신이 없었다. 바퀴에 밟혀서 터진 옆구리와 상처 압박, 강과 물벼락, 소각과 불길에 휩싸이는 차. 그리고 떨어진 목까지. 뒤늦게 알아챈 연결점이 머릿속에서 팽팽 돌았다. 여기까지 떠올렸다면 꼭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다음에 일어날 일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바닥의 머리를 향했다. 분명 새까맣게 타서 표정 따위 볼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샘은 그 머리가 저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할로윈이 끝나기까지 아직 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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