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얀토키님.png
KakaoTalk_20230830_002923046.png

 “절차는….”

이상한 곳이었다. 밖에서 본 모습은 분명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고풍스러운 대저택이었는데, 안은 그렇지 않았다. 저택이 약속을 드린다는 이상한 안내문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들어오자 갑자기 사라진 문도, 이상한 것은 맞지만,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딘은 안내문을 마저 읽으려는 샘의 어깨를 툭툭 쳐서 주의를 돌렸다.

 “왜 그래?”

 “나 방금 한 번 죽었어.”

 이것도 딘이 말하려는 이상한 점은 아니었다.

* * *

 “죽었다고?”

 “응. 그보다 여기 진짜 이상—”

 “당연히 이상하겠지, 죽었다며!”

 샘은 딘을 붙잡고 몸을 살펴봤다. 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딘이 죽은 것은 10분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안내문을 읽은 후 단서든 실종자든 뭐든 찾아보자며 각자 방을 살펴보던 와중에 죽었다.

 딘은, 사실 뭐에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충격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알지 못’했다. 딘은 그저 네 번째 방에 들어가 무언가를 보기만 했다. 그것은 딱히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생물체 같기도 했지만 장식품 같기도 한 그것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이게 뭐지? 그때까지만 해도 딘은 멀쩡히 살아있었다.

 ‘…아.’

 딘이 죽은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때도, 그것은 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딘은 왜 죽었는가?

 ‘…아. 저건—’

 딘은 샘에게 혹시 저게 뭔지 아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샘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그것의 정체를 이해했다. 아. 저건 ■■■■■■■다. 그 순간 딘은 죽었다. 이해하면 안 되는 것을 이해한 탓일까? 뇌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건지 뭔지. 죽음으로 이어진 과정은 전혀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것의 정체를 이해하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 중에 비슷한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죽었다고?”

 “어. 그러니까 ◆◆◆호실엔 들어가지 마.”

 딘은 네 번째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샘은 딘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힐끗 보곤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죽어서 되돌아온 거야? 트릭스터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때는 형이 죽고 내가 시간을 되돌아간 거라 좀 다르긴 하지만.”

 “모르겠어.”

 “딘.”

 “일단, 음…아무 데나 들어가진 말자. 여기 그냥 단순히 유령 들린 저택은 아닌 것 같다.”

 “그러겠지. 출입구가 사라진다거나 미로처럼 계속 이어지는 공간은 공포영화 클리셰지만 이건…….”

 샘은 말끝을 흐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거, 백룸이랑 비슷하잖아.”

 윈체스터 형제는 평소처럼 기이한 내용의 기사를 읽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 주인을 알 수 없는 고풍스러운 대저택. 그곳을 매입해 판매하려던 부동산 업자, 수리를 맡았던 인부 중 일부, 귀신 들린 저택이란 소문을 듣고 담력 시험을 하러 놀러 왔던 사람, 호러 전문 스트리머 등등이 이곳에서 실종되었다. 실종자가 늘어나자 아예 저택을 허물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장비가 고장이 나거나 철거를 진행하던 이들에게 사고가 나서 결국 중지되었다고 했다.

 그런 흉흉한 곳인데도 잊을만하면 머리를 들이미는 멍청이들이 존재했다. 샘과 딘은 일주일 전 실종된 그 멍청이들의 흔적을 찾고 저택에 깃든 존재를 알아내 퇴치할 생각이었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그래서 저택의 내력을 조사하고 관련된 자료를 빠짐없이 머릿속에 집어넣고 왔는데.

 “그러게. 공간이 반복되는 것까진 예상했는데, 저택 내부가 왜 호텔 복도나 사무실같이 생겼지?”

 샘의 말대로였다. 다소 차이점은 있지만 창문 하나 없이 계속 이어지는 누런 벽과 천장에 달린 형광등은 최근 유행한 ‘백룸’에 나오는 것과 유사했다. 하지만 우린 저택에 들어왔는데? 딘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가 본 영상 속 주인공은 갑자기, 어떤 전조도 없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노란 벽이 가득한 공간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출구도 창문도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괴물에게 죽었던가? 여기도 비슷하긴 했다. 딘은 방금 전, 아니, 지금으로부터 5분 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 때문에 죽었으니까.

 딘은 유령 외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곳은 툴파로 인해 생겨난 공간일 수도 있고, 혹은 이곳에서 살아나온 사람이 허구를 덧붙여 백룸이란 괴담을 퍼뜨렸을 수도 있었다. 전자라면 전에 상대해 본 적 있으니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후자면 막막하군. 백룸을 소재로 한 공포게임이 있긴 했는데 그 게임의 내용대로 전개될 거란 보장이 없었다. 애초에, 이미 언급했듯, ‘비슷한’ 공간이었지 백룸 그 자체라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 나오는 괴물들은 기괴했지만, 존재를 인지한 것만으로 뇌가 스스로 생을 거부하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것저것 설정이 덧붙여지는 류의 괴담이니 ‘그런 설정’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이상해.”

 “백룸은 퇴치를 어떻게 해야….”

 “이거 하나로 단정 짓긴 어렵겠는데. 저택 외부는 힐 하우스 같았는데 안내문은 나폴리탄 괴담이고, 저택 내부는 백룸이랑 비슷하긴 한데 출구 없이 이어지는 공간은 그레이브 인카운터에도 나온 거고.”

 “그레이브 인카운터?”

 “공포영화야. 아무튼, 그리고 내가 보고 죽은 그건…굳이 분류해 보자면 크툴루랑 비슷하고.”

 “이것저것 섞였네.”

 “그리고 저기 네 번째 방. 숫자 4는 동양에서 불길하게 여기는 숫자잖아. 맞지?”

 “그렇지.”

 “전 세계의 문화권에서 기피하는 숫자들은 죄다 피해야 하나 싶다. 666호실에선 악마가 나오는 건 아닌가 몰라.”

 “음.”

 “아니, 악마가 나오면 좋은 건가? 걔들 좀 쥐어 패서 여기 나가는 거 돕게 시키면….”

 “이런 말을 하고 싶진 않은데…형 방금 되게 사탄 같았어.”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딘은 일부러 과장되게 상처받은 척했다. 샘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여기서 없어진 출입구가 다시 생겨나길 바랄 순 없으니 돌아다녀 보자.”

 “그래도 될까? 형 방금 죽었잖아.”

 “그러니까 둘이서 조심히 돌아다녀 보자고. 내가 앞장서서.”

 “형. 방금 죽었잖아.”

 샘은 굳은 얼굴로 딘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내가 앞장선다고. 나는 검증이 됐잖아.”

 “기회가 한 번인 거일 수도 있잖아. 내가—”

 “나한테만 주어진 기회면?”

 “…….”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검증이 됐어. 내 목숨 하찮게 생각하고 너만 위하려고 하는 말이 아냐. 나는 경험을 했고, 넌 아니잖아.”

 “…하지만.”

 “그리고 내가 뭐, 겁도 없이 오만 군데 다 돌아다니겠다고 했어? 조심히 다닐 거야. 앞장선다고 해서 나만 죽는단 보장도 없으니까.”

 “…알았어.”

 샘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의를 끝내고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에 늘어선 방을 열댓 개쯤 지났을 때 딘이 말했다.

 “죽었을 때 말이야. 안내문이 뜨더라고.”

 “안내문?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읽다 말았….”

 “됐어, 돌아가지 않아도 돼. 죽었을 때 안내문 떴다고 했잖아. 내가 기억하고 있어.”

 “그래?”

 “영원한 안식을 약속한다길래 필요 없다고 나가게 해달라고 했더니 절차가 있다면서 그에 따르면 된다고 하더라고.”

 “무슨 절차?”

 “나름의 규칙이 있는지 ‘절차’에 따라 행동하면 나갈 수 있대. 대충…방 탈출 게임 같던데.”

 “으음….”

 “다음 방으로 가는 열쇠를 찾거나 문제를 풀거나…. 그렇게 몇 단계를 거치면 나갈 수 있대.”

 “형의 목숨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

 “응.”

 “…….”

 “조심한다고 했잖아.”

 내가 그렇게 못미덥냐? 투덜거리면서도 가볍게 물었으나 샘은 대답하지 않았다.

 “새미.”

 “…형은—”

 샘은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도중에 멈췄다. 근처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진 듣지 못했던 것 같은데? 무언가를 피해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입을 연 것인지, 이쪽으로 이동해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람이 맞긴 한지 의심이 되었다. 그래서 샘은 하려던 말을 멈췄다. 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한 번 교환하곤 조심스레 움직였다. 목소리는 방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젠 싫어…나가고 싶어….”

 “하지만 무섭다고 여기 틀어박힌 건 너잖아.”

 “그건…그렇지만…….”

 “사라, 나가고 싶으면 일단 이 방에서 먼저 나가야 해.”

 “괴물은…?”

 “없어.”

 “저번엔 있었잖아, 마크.”

 사라와 마크. 일주일 전에 실종된, 샘과 딘이 찾으러 온 멍청이들 중에 그런 이름이 있었다. 딘은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똑똑.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거기 사람 있나요?”

 대답은 없었다. 노크를 한 게 사람인지 사람 흉내를 내는 괴물인지 알 수 없어 입을 다문 모양이었다.

 “사라와 마크 맞죠? 일주일 전에 실종된. 우린 댁들을 찾으러 온 사람입니다.”

 갇힌 신세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자 안에서 기어들어 가는 듯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 구조대인가요?”

 “음. 비슷한 겁니다.”

 “비슷한 게 뭔데요?”

 “문 앞에 신분증 두고 좀 멀리 떨어져 있을 테니 확인해 봐요.”

 기이한 공간에 갇혔어도,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헌터라고 소개하면 신뢰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딘은 주머니에서 FBI 위조신분증을 꺼내 문 앞에 내려놓고 물러났다. 그들은 몇 분 정도 머뭇거리다 아주 조금 문을 열곤 그 틈으로 손을 뻗어 신분증을 가져갔다.

 “FBI가 여긴 왜…?”

 “이 저택에서 실종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저희 쪽으로 사건이 넘어왔어요. 단순 실종이 아니라 계획된 범죄인 건 아닌가 해서.”

 “아아…….”

 FBI 신분증과 딘이 둘러댄 말이 신뢰감을 주었는지, 이내 문이 다시 열렸다.

 “들어오세요. 여긴 안전해요.”

 “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사라와 마크가 있는 방은 다른 방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사라는 이 방이 안전하다고 했는데, 딘이 보기엔 그저 이곳이 빈방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죽기 전, 네 번째 방에 가기 전에도 빈방은 있었다. 모든 방에 괴물이 존재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라가 굉장히 겁에 질려있었기 때문에 딘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뭐라고 하셨죠? 일주일 전에 실종됐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네. 신고가 된 건 사흘 전이지만, 행적을 조사해 보니 두 분이 이 저택에 온 지는 일주일 됐더군요.”

 “일주일…한 달은 된 줄 알았는데…….”

 “한 달이요?”

 “진짜 한 달 동안 갇혀있었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심적으로 지쳤다는 뜻이에요.”

 마크가 대신 설명했다.

 “정말로 한 달이 지났으면 사라는 죽었을걸요.”

 “마크!”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잠도 설치고 있잖아. 사라, 나는 악담을 한 게 아니라 네 몸 상태가 그만큼 안 좋아지고 있다는 뜻으로 말한 거야.”

 마크의 말대로 사라는 굉장히 수척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샘과 딘이 조사했을 때, 실종된 일행은 둘뿐만이 아니었다.

 “저…괴로우시겠지만, 혹시, 다른 분들은….”

 “…죽었어요.”

 사라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 그 거미 같은…아니, 거미는 아니었지만 다리가 긴 이상한….”

 “괜찮아요, 사라. 구체적인 증언을 듣고 싶어서 물은 건 아니에요. 대략적인 설명 정도면…아니, 아니에요. 일단 여기서 같이 나가죠.”

 샘은 비틀거리는 사라를 부축했다. 마크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일단 나가자.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괴물은 이제 없어.”

 “없다뇨?”

 “어느샌가 사라졌어요.”

 아닐 텐데. 사라가 설명한 것과는 다른 존재이지만 딘은 한 번 경험했다. 혹시 방금 막 들어온 사람과 며칠 버틴 사람은 다른가?

 “그래서 제가 돌아다니면서 먹을 거나 마실 물을 구할 수 있었어요.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괴물이 있었다면 식량을 찾기는커녕 방에서 나오지도 못했을걸요.”

 “언제부터 괴물이 사라졌어요?”

 “음…사흘째 되던 날? 아니, 그날 제이크가 사라졌으니 그다음 날이라고 해야 할지도….”

 “사라, 저 말이 맞나요?”

 “네?”

 “기억을 맞춰보려는 겁니다. 워낙 이상한 상황이니까 기억에 혼동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저는 첫날에 그…일을 겪고는…여기서 한 번도 안 나가서 모르겠어요.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런지 비명소리도 몇 번 들어서….”

 “언제 들었는데요?”

 “사흘째 되던 날이요.”

 “제이크라는 분의 비명 소리였나요?”

 “아뇨, 마크의 비명 소리였어요.”

 “전 비명을 지른 적이 없지만요.”

 마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 그래서…저보다는 마크의 설명을 듣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딘은 감사인사를 건네곤 마크와 함께 먼저 방을 나섰다. 사라는 여전히 겁에 질려있었지만 샘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방에서 나온 사라는 주변이 조용한 것을 보고 안도했다.

 네 사람은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복도였지만 한참을 걷고 나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 표지판에는 [안식]이, 오른쪽 표지판에는 [고통]이 적혀있었다.

 “안식이겠죠?”

 “일단 고통은 아닌 것 같은데….”

 마크와 사라는 왼쪽으로 가고 싶어 했다. 샘은 그들을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뻔해서 아닐 것 같아요.”

 “샘 말이 맞아요.”

 “하지만….”

 “안내문 기억하세요?”

 샘은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앞부분은 기억하고 있었다.

 “영원한 안식을 약속드립니다….”

 “괴물이 나오는 저택이 약속하는 안식을 선택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딘의 말에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는지, 사라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옳은(right) 쪽이 맞는 것 같아서요. 말장난이죠.”

 “말장난이요?”

 “이런 소소한 게 단서일 때도 있더라구요.”

 그래도 안내문까지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 딘의 추론은 그럴싸했다. 네 사람은 [고통]의 표지판이 가리키는 오른쪽 길로 갔다. 불안감에 걸음이 조금 느려졌지만, 다행히 무언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번엔 복도가 짧았다. 물론 갈림길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것뿐이라 시간은 여전히 좀 걸렸다. 복도의 끝엔 붉은 문이 있었다.

 딘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도 없다니 뭐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이야. 추리소설.”

 “저도 그거 알아요.”

 사라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근데 그게 무슨 힌트인 걸까요?”

 “전 모르겠네요.”

 “저도.”

 딘과 마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동안 샘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 문을 살펴봤다.

 “일단은 책이 출간된 연도를 말하는 것 같아요. 방 호수가 19로 시작하는 네 자리 숫자네요.”

 “몇 년도인지 알아?”

 “1938년, 아니면 1939년인 것 같아.”

 그 말에 다들 1938과 1939를 찾아 복도를 되돌아갔다.

 “근데 샘. 그런 건 어떻게 알아?”

 “이건 꽤 유명한 책이야, 형.”

 “그래도 출간된 연도까진 어떻게 아는 건데?”

 “지금 그게 중요해?”

 “어? 어어, 아니지. 어.”

 궁금해할 수도 있지…. 딘은 입을 비죽이며 1938호를 찾아 열었다.

 “아.”

 그곳엔 눈이 가득했다.

 눈.

빨간눈주홍눈노란눈초록눈파란눈보라눈회색눈검정눈하얀눈온갖색의눈들눈동자들감기지않는눈꺼풀깜박깜박수많은눈이벽에박혀눈눈눈눈눈눈수많은눈이바라보고깜박깜박눈동자속에눈이비치고깜박깜박눈동자그속에또눈이눈이눈이눈이가득한눈이눈동자가눈속에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

 탁—.

 딘은 문을 닫았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샘이 곧장 달려와 딘의 안색을 살폈다.

 “딘, 괜찮아?”

 “어? 어어, 괜찮아. 좀 놀라긴 했는데. 그냥 좀…아니 조금은 아니고, 많이 징그러워서.”

 “뭐가요?”

옆에 서 있던 마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못 봤어요?”

 “뭘요?”

 “아니에요, 못 본 게 다행이에요. 악몽에 나올까 무섭네요.”

 “뭘 봤는데?”

 “심각한 거 아냐. 눈이 엄청 많았어. 사람 눈. 그게 벽이랑 천장이랑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있다고 생각해 봐.”

 “…으음. 꿈에 나올까 무섭네.”

 “그렇지? 나만 봐서 다행이야. 아무튼 1938은 아닌가 봐, 열쇠는 못 봤어.”

 딘의 말을 들은 세 사람의 시선이 1939호로 향했다.

 “뭐가 있을까?”

 “그냥 평범한 방이고 열쇠만 있으면 좋겠네요….”

 “하하, 걱정 마. 사라. 별거 없을 거야.”

 마크는 그렇게 말하곤 1939호의 문을 열었다. 샘이 미처 말릴 새도 없었다.

 “어….”

 다행히 1939호에서 튀어나오는 괴물은 없었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방 같기도 했다. 그러나 빈방은 아니었다.

 “…….”

 방 안쪽에, 새하얀 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는 가장 안쪽 벽에 붙어 서 있었고, 치마로 추정되는 것을 입고 있었다.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반신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옷자락이 무릎 부근까지 내려와 있었는데, 상반신이 보이지 않아서 치마인지 원피스인지 알 수 없었다. 성별도 알 수 없었다.

 “…….”

 그게 전부였다면 조금 놀라고 말았을 텐데. 딘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천장엔 새카만 어둠이 깔려있어서 윗부분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

 그 하반신의 허리는 천장에 닿아있었다.

 “…장식…이겠죠? 하하, 악취미적인 장식품…이네요.”

 사라가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제발 저게 장식품이길 바랐다.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은, 장식품이라기엔 생기가 있었다. 움직임은 없지만 분명 살아있는 무언가였다. 문제는 그 방 한가운데에 붉은 열쇠가 놓여있다는 것이었다. 샘은 문을 닫았다.

 “일단 두 가지는 확인됐네요. 열쇠가 이 방에 있다는 것과, 문을 여는 것만으론 저…정체 모를 무언가가 움직이진 않는다는 것.”

 “들어가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힌트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여서 병정 노래와 관련된 문제가 나올 줄 알았는데.”

 “단순히 열쇠가 있는 방의 위치와 관련된 힌트였나 봐요.”

 “으음…빠르게 달려가서 가져오는 수밖에 없나? 쫓아오는 속도가 어느 정도일지-”

 “샘.”

 “응?”

 딘은 샘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저거…하반신만 있는 걸까?”

 “…어?”

 “천장이 이상하게 안 보였거든. 일부러 가리려는 듯이.”

 보이는 건 천장 높이의 하반신.

 “혹시…이렇게…몸을 굽히고 있는 상태인 거면?”

 딘은 상체를 숙였다.

 “열쇠 위치가 저 정체 모를 거인의 입 바로 아래인 거면?”

 열쇠에 도달하는 순간 몸을 더 숙여서 잡아먹는 거라면?

 “저기, 다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마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무것도 없던데.”

 “다리 못 봤어요?”

 “무슨 다리요?”

 “…….”

 “저기 방 안쪽에, 끝에 서 있는 하얗고 커다란 다리요. 사람 다리같이 생긴 거.”

 “그런 거 못 봤는데요?”

 샘은 한숨을 한 번 쉬곤 마크와 문을 번갈아봤다. 한 번은 괜찮았지만 혹시나 두 번째엔 달라지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딘은 마크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샘에게 물러나라는 듯 손짓을 했다.

 “마크.”

 딘은 문을 열었다.

 “저거 보여요?”

 “아뇨.”

 “저기 안쪽에 있는 거요.”

 “뭐가 있나요? 제가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데.”

 “…….”

 “뭐가 있나요?”

 샘은 조용히 사라를 제 뒤로 보냈다. 딘은 샘을 힐끗 보곤 마크에게 말했다.

 “그럼 같이 들어갔다 와요.”

 “딘—”

 “아무것도 없는데 제 동생이랑 사라가 겁에 질려있네요. 별거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음. 그러네요. 같이 가는 건가요?”

 “네.”

 딘은 따라오지 말라는 듯 샘에게 손을 한 번 뻗고는 마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다리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열쇠가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딘은 바로 몸을 숙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잖아요.”

 딘은 열쇠를 줍자마자 문을 향해 몸을 옆으로 굴렸다.

 “괜찮아요. 다들 들어오셔도 돼요.”

 샘은 굴러오는 딘을 붙잡고 방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기 전,

 “아무것도 없어요. 괜찮아요.”

 하반신만 남은 마크가 말했다.

 세 사람은 말없이 복도 끝으로 향했다. 딘은 사라의 시선을 느꼈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 때문에 마크가 죽었다고 원망하고 싶은 거겠지? 딘은 먼저 말을 걸어도 될지 고민했다. 그리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딘.”

 먼저 입을 연 건 사라도 딘도 아닌 샘이었다.

 “마크가 이미 죽은 사람인 걸 알았던 거지?”

 “…그게 무슨 뜻이에요?”

 “운이 좋은 편이라 하더라도 부상 없이 일주일 동안 식량을 찾아 돌아다닌 건 말이 안 돼요. 혼자라면 모를까 두 사람의 몫을 구해서 되돌아오기까지 해야 한다면.”

 “…….”

 “아니, 그건 가능하다고 칩시다. 일주일 정도면 불가능하진 않아요. 하지만 친구들이 죽은 걸 봤고 이 공간을 전부 돌아다녀 본 것도 아닌데 괴물이 없다고 단정한 거는요?”

 “그건…희망을 가지고 싶어서….”

 “그리고 당신도 방금 봤잖아요. 우리 셋은 본 걸 그 사람은 전혀 못 봤어요.”

 사라는 고개를 숙였다.

 “괴물이 이젠 없다며 안전하게 돌아다닌 건 더 이상 위협이 안 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에요. 저택이 그에게 준 안식이 뭔지는 모르겠지만…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에요. 형도 그거 알고 있었지? 그러니까 방금 전의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사고도 아니었어요.”

 “…알아요.”

 “미안해요. 이렇게 말해두지 않으면 딘은 쓸데없이 다 자기 탓을 하거든요.”

 “샘!”

 “맞잖아. 방금 사라에게 어디까지 말할지, 원망해도 좋단 말을 언제 할지 고민했으면서.”

 답지 않게 냉정한 말부터 한다 싶더니 그런 걱정을 했나. 딘은 어쩐지 샘의 눈을 마주보기 힘들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죄송해요. 저는 그런 원망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이미 죽었다고 해도 친구분을….”

 “마크는 제 친구지만 방금 전의 그건 마크가 아니었어요. 그러니 제 친구도 아니에요.”

 사라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의 그는…그 위험한 방에 아무것도 없다며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했잖아요. 마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이곳에 들어오고 그…끔찍한…일이 일어났을 때, 마크는 위험하니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식량은 발이 빠른 자신이 구해보겠다면서. 하지만 최근의 그는 계속 나가자고 했어요. 더 이상 괴물이 없다면서.”

 사라는 아랫입술을 잠시 깨물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는, 원망하지 않아요. 화를 낼 생각도 없구요. 그저 저도 같은 질문을 하려다 망설인 거였어요.”

 “같은 질문이요?”

 “뭐가 있었냐는 마크의 질문에 안을 다시 보여주기 전부터 뭔가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아서요.”

 “음…그건….”

 딘은 볼을 긁적였다.

 “그냥, 먼저 경험한 게 있어서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1938호를 확인했을 때 분명히 마크에게도 그 징그러운 눈들이 보였을 텐데 못 본 것처럼 말하길래. 제 동생 같은 추리를 한 건 아니에요. 그리고….”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마크의 비명을 들었다고 말했던 게 생각나서요. 그때 정말로 죽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랬군요….”

 담담하게 말했지만 사라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사라는 옷소매로 눈을 문질러 닦아냈다.

 “저, 반드시 여기서 나갈 거예요. 저라도 꼭 나가서…다들 얼마나 노력했는지, 가족들에게 말해줄 거예요.”

 “네. 꼭 나가요.”

 세 사람은 다시 붉은 문 앞에 도착했다. 열쇠를 넣고 돌리자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다시 똑같은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넓은 공간이었다. 수백 명은 쉽게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그들은 복도의 경계에서 멈춰 섰다.

 “샘? 딘? 거기서 뭐 해?”

 “사라? 너 사라 맞지?”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 빼곡히 서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샘과 사라는 당황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이번엔 무슨 문제를 내려고 이러는 거지? 딘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벽에 붙은 안내문을 발견했다.

 딘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딘? 왜 그래?”

 “가짜를 찾으래.”

 “…전부 다 가짜 아니야?”

 “일단 읽어봐. 사라, 같이 읽어보세요.”

 짧은 글이었기에 두 사람의 표정은 금세 굳었다.

 “잘못 지목하면 저쪽이 죽는다고? 상관도 없는 사람들인데 우리의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애초에 저건…저건 다 가짜 아니에요? 저 사람들이 갑자기 이 저택에 왔을 리가 없잖아요. 저기, 저 붉은 머리 남자는 저와 마크의 친구인데 호러나 오컬트라면 질색해서 이번 여행에 불참했어요. 피터가 갑자기 여기 와 있을 리가…아니면 그래서 가짜인가?”

 샘은 피터를 지목할지 고민하던 사라를 돌려세웠다.

 “따지자면 다 가짜이긴 할 거예요. 저희 기억을 읽어내서 만든 환영이든 뭐든…그런 거겠죠.”

 “그럼 기억에 어긋나게 구현한 가짜를 찾으라는 건가요?”

 “그러겠죠. 근데 그걸 어떻게 확인하느냐가 문제인데…하나씩 붙들고 질문을 하다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요.”

 이다음도 있을 텐데 여기서 시간을 얼마나 보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사라가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샘과 딘의 생각을 알아차린 사라가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마 수천 단위가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얼마 안 걸릴 거예요.”

 “그럼 다행이구요.”

 “일단 제 지인들 좀 한 번 둘러보고 올게요.” 

 사라가 지인들 근처로 다가가 기웃거리는 동안 샘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택이 진짜를 죽일 능력을 정말로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샘은 확인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되도록 한 번에 맞추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겠지. 딘은 샘에게 동의했다. 저택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샘은 지인들을 둘러보고 온 사라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딘은 그동안 자신도 단서를 찾으면 알려줄 생각으로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듯 가만히 서서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대화를 엿듣고 판단하라는 건가? 질문은 해도 되나? ‘너는 진짜야 아니면 가짜야?’ 같은 질문은 안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한 명 한 명 눈에 담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해답은 생각보다 쉬웠다.

 “샘.”

 “왜? 좋은 아이디어 있어?”

 “찾았어.”

 “어떻게?”

 샘과 사라는 의논하던 것을 멈추고 딘을 쳐다봤다. 딘은 인파를 헤치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다가갔다.

 “캐스.”

 딘은 그의 넥타이를 뒤집었다.

 “너 넥타이 똑바로 맬 줄 모르잖아. 가짜는 너야.”

 그러자 정답이라는 듯 카스티엘의 몸이 푸른 잉크처럼 녹아내렸다. 그것은 딘의 손에 모여들어 열쇠의 모양으로 굳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샘은 딘에게 다가왔다.

 “캐스였어? 근데 캐스 이제는 넥타이 제대로 맬 줄 알잖아.”

 “코트가 옛날 거여서 알아봤어. 캐스가 입는 트렌치코트, 몇 번 바뀌었잖아.”

 딘은 제 손 위에 놓인 푸른 열쇠를 내려다봤다. 푸른 열쇠여서 그 녀석이었나? 저택의 의도인지 실수인지 알 수 없었다. 뭐, 잘못 지목하면 그 사람이 죽을 거라며 심리적으로 압박했으니 좋게 해석해 줄 이유는 없었다. 아무튼 덕분에 시간 낭비 없이 금방 찾아내서 다행이었다. 그들은 이젠 텅 비어버린 공간을 지나 열쇠와 같은 푸른 문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문은 문제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문 너머엔 다시 긴 복도와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몇 번 더 반복해야 할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딘, 이게 마지막이래.”

 “그래?”

 딘은 고개를 내밀어 샘과 사라가 읽은 안내문을 확인했다.

 “저것도 무슨 책 제목인가? 성경 구절에서 자주 본 것 같긴 한데.”

 “아니면 말 그대로 뭘 보든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하는 규칙일지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혹시 괴물이 나오면….”

 복도를 걸어 첫 번째 방에 도착했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세 사람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봤다. 그곳에는 각양각색의 광대들이—

 탁—.

 샘은 곧바로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너 아직도 피에로 무서워해?”

 “…….”

 “저, 저도 놀랐어요. 광대들 무섭죠. 어린애들도….”

 “그게, 음. 아니에요. 어…그냥 좀 꺼린다고 해야 하나.”

 “무섭다는 거잖아.”

 샘은 딘을 노려봤다.

 “물러나 있어. 사라, 제 동생과 같이 있어 주세요. 심장마비라도 오면 골치 아프니까요.”

 “딘! 그 정도는 아니거든?!”

 딘은 킬킬 웃으며 샘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음. 이 정도로 많이 있으니 좀 기괴하긴 하네. 방 안에는 열쇠가 없었다. 딘은 나와서 문을 닫았다.

 “일단 여긴 없네요. 다음 방으로 가죠. 처음엔 저절로 열리는 모양인데, 소리 지르지 않게 조심하세요. ‘두려워 말라’의 기준을 아직은 모르겠으니까.”

 다음 방에는 뱀이 가득했다. 딘은 바로 문을 닫고 속으로 한참 동안 욕을 했다.

 “형은 뱀을 무서워하는구나.”

 “그게 안 무서운 놈이 이상한 거야.”

 이번에는 샘이 방을 확인했다. 열쇠는 없었다. 세 사람은 다음 방으로 향했다. 그곳엔 다섯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한 명은 샘과 딘에게도 낯익은 사람이었다.

 “사라.”

 “살았네.”

 “좋겠다.”

 “살았구나.”

 “좋겠다.”

 “곧 나가겠네?”

 “좋겠다.”

 죽은 사라의 친구들. 이 저택에 함께 온 일행들이었다.

 “근데 사라.”

 마크가 말했다.

 “그동안 네가 먹은 거, 뭐였을 것 같아?”

 그리고 그들의 옷이 피로 젖기 시작했다. 사람이 베어 먹은 듯이 얼굴과 몸 곳곳의 살점이 뜯어졌다. 사라는 비명조차 지르지도 못하고 그들을 바라보다가 발을 내디뎠다. 샘은 사라의 몸을 붙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문이 닫혔다.

 “사라.”

 “아….”

 “사라!”

 “내, 내가…내가….”

 “정신 차려요.”

 딘이 사라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저건 당신 친구들이 아니에요. 마크는 착한 사람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렇죠? 그가 저런 말을 할 리 없어요.”

 “그, 그렇지만…그렇지만 그동안….”

 “저택이 당신을 끌어들이려는 거예요. 여기서 영원히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얕은 수작에 넘어가지 마요. 나가서 가족들에게 말해줄 거라고 했잖아요? 친구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대신 말해줄 거라고 했잖아요.”

 사라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방금 그 헛소리는 잊어요. 신경 쓰지 마요.”

 “네…네, 그럴게요.”

 세 사람은 잠시 쉬면서 몸을 추스른 뒤 다음 방으로 향했다. 그 방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소리가 들렸다.

 컹—!

 

 샘과 딘은 재빨리 문을 닫았다. 딘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찰나였는데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헬하운드지?”

 “어…헬하운드겠지.”

 “헬하운드요?”

 딘은 사라의 물음에 대답해 줄 기력이 없었다. 샘이 말했다.

 “사라. 혹시, 정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요. 눈이 온통 검거나 노랗거나…아무튼 이상한 사람이 영혼을 주면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헛소릴 하면 꼭 거절하세요.”

 “어…소원을 빌면 어떻게 되는데요?”

 “10년 후에 지옥의 사냥개가 쫓아와서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영혼이 지옥으로 끌려가요.”

 “진짜예요. 경험자거든요.”

 간신히 진정한 딘이 샘의 말에 덧붙였다.

 “네?”

 “저희는 사실 FBI가 아니라 저런 괴물들 상대하는 헌터에요. 진짜 경험해 봐서 하는 말인데 악마랑 절대 엮이지 마세요.”

 사라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그들은 다음 방으로 향했다. 그 방에는 쇠창살이 있었다. 그 너머의 붉은 눈을 본 딘은 바로 샘을 밖으로 끌어냈다. 사라가 문을 닫았다.

하얗게 질린 샘의 눈치를 보며 사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금 그건 뭐였는지 물어도 될까요?”

 “세상에서 제일 X 같은 녀석이요.”

 “사탄이에요.”

 샘이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말했다.

 “루시퍼요.”

 “아….”

 “그냥, 좀, 악연이 있어서.”

 사라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행히 그 방에는 열쇠가 없어서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문이 열리기 전, 샘이 사라를 자신의 뒤로 보내며 말했다.

 “딱히 순서가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이번엔 당신 차례일 수도 있으니 뒤에 계세요.”

 “고마워요. 무서운 건 마찬가지일 텐데….”

 “저흰 이게 직업이라 비교적 괜찮아서요.”

 문이 열렸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눈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세 개의 고리와 여섯 장의 날개를 가진 무언가였다.

 「두려워 말라.」

 그것이 웅웅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딘은 헛웃음을 지었다. 힌트가 맞긴 맞았네. 그리고 샘의 추측대로 이것은 사라가 무서워하는 존재일 것이다. 천사. 보통은 인간의 형태에 날개가 달린 것으로 묘사되지만, 다른 형태로 묘사되기도 했다. 누구든지 두려워할 만한 모양새였다. 다만 샘과 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딘은 방 안을 살피다 열쇠를 발견했다. 딘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것을 주워들었다.

 「두려워 말라.」

 “…….”

 딘은 방에서 나가려다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것은, 천사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고리의 눈으로 딘을 응시했다.

 “야.”

 「두려워 말라.」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천사거든? 걔는 크라이슬러 빌딩만큼 커. 그래서 너는 안 무서워.”

 걔가 나한테 실망해서 날 두들겨 팼을 때가 더 무섭다. 딘은 그렇게 말하곤 방에서 나왔다. 어쩐지 천사의 날개가 아래로 조금 축 늘어진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세 사람은 복도 끝의 하얀 문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그 너머엔 그리 길지 않은 복도와 문이 있었다. 저택에 처음 들어올 때 봤던 문이었다.

 “출구가 맞겠죠?”

 “아마도요.”

 사라는 드디어 나갈 수 있단 생각에 힘이 나는지 전보다 힘찬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샘은 사라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다가 딘에게 말했다.

 “생각보단 쉬웠네.”

 “쉬웠다고?”

 “형이 한 번 죽고 또 죽을 위기를 한 번 넘기긴 했지만.”

 “잔소리하려는 거면 그만 해라. 피곤한데 잔소리까지 듣긴 싫어.”

 “고생 많았어, 딘. 형이 다 해서 나는 별로 한 게 없네.”

 “내가 뭘?”

 “탈출 정보도 알아내고 열쇠도 형이 다 찾고.”

 “뭔 소리야? 처음에 네가 그…추리소설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으면 방 하나하나 다 열어보다가 크게 다쳤을걸. 시간도 엄청 걸렸을 테고. 뭐, 내가 날렵하고 멋있게 붉은 열쇠를 가져오긴 했지.”

 딘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샘이 웃으며 말했다.

 “날렵하긴 했는데 멋있진 않더라. 데굴데굴 구르는 게 멋있긴 뭐가 멋있어? 다람쥐 같긴 했네.”

 “새미!”

 “나중에 조디나 도나한테 말해줘야지.”

 사라는 먼저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먼저 열고 나갈 용기가 없는 건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샘은 사라를 대신해서 문을 열었다. 밝은 빛이 들어와 그들은 잠시 눈을 찡그렸다. 빛에 익숙해진 뒤 그 너머를 확인했다. 밖이었다.

 “드디어…!”

 “밖이네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사라는 여러 번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 밖으로 나갔다. 샘은 문고리를 잡은 채 고개를 돌려 딘을 바라봤다.

 “딘. 우리도 나가자.”

 “그래.”

 샘은 밖으로 한 걸음 내딛으려다 멈칫했다.

 “딘.”

 “어.”

 “나가자니까.”

 “너 먼저 나가.”

 고개를 돌렸다. 딘은 그 자리에-…. 아니. 딘은 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같이 나가.”

 “야, 네 덩치를 생각해라. 성인 남자 둘이서 한꺼번에 나가야 할 이유가 뭔데? 불편하게.”

 “그럼 형이 먼저 나가든가.”

 “너 나가는 거 보고 나갈게.”

 “딘.”

 “먼저 나가라니까.”

 “왜 안 나가?”

 “새미.”

 “형…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거 맞아?”

 샘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저택 안과 밖의 경계선에 서서 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 말했잖아.”

 딘은 여전히 빛이 닿지 않는 곳에 멈춰 선 채로 말을 이었다.

 “방금 죽었다고.”

* * *

 딘은 죽음을 맞이했다. 사방이 어둡다가, 서서히 밝아졌다. 딘은 새하얀 공간에서 눈을 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샘은 어쩌지? 그 녀석도 죽은 건 아니겠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딘은 이것을 자신만 죽은 거라고 받아들여도 될지 고민했다. 그때, 허공에 안내문이 떠올랐다. 저택에 들어왔을 때 본 안내문이었다.

 

 

 

 

 

 

 “필요 없어.”

 딘은 단번에 거절했다. 그것이 딘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딘이 대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문 위의 글자가 변했다. 그것과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한 모양이었다.

 “내 안식은 그런 게 아냐.”

 “내 동생이 살아서 여길 나가는 것, 그리고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 내가 원하는 건 그거야.”

 “그것 말고는 받아들일 수 없어.”

 한동안 안내문은 빈 백지상태였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다시 글자가 떠올랐다.

 “무슨 절차?”

 “내가 샘을 도울 수 있어?”

 “그래.”

 딘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 *

 샘은 여전히 빛을 등지고 경계선에 서 있었다. 어서 가. 딘은 어서 문 너머로 나가라는 듯 손짓했다. 샘은 말없이 제 형을 바라보았다.

 “새미.”

 딘은 말을 이었다.

 “여기서 나가면, 이젠 이런 거 하지 말고 평범하게 살아.”

 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문을 닫았다.

2.png
3.png
4.png
5.png
6.png
7.png
8.png
9.png
10.png
11.png
12.png

슈퍼내추럴호러합작

©2023 by 슈퍼내추럴호러합작.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