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ole Wide World
딘은 원래 좀비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었다. 우글우글 쏟아지는 좀비들과 그 좀비들을 멋있게 몽둥이 따위로 해치우는 주인공. 쾌감이 있달까. 좀비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좀비들은 몽둥이로 때린다고 죽지 않았고, 45구경 총으로 미간을 쏴도 쓰러지지 않았다. 바주카포로 몸통을 날려버리면 모를까. 그나마 영화와 달라서 다행인 점은, 정부는 금방 정상화돼서 좀비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민들을 안전한 구역에 옮겨 그 경계를 나눴다. 그니까 문제는 뭐냐면, 딘이 그 지역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좀비 시대에 땅을 세 구역으로 나눈다면, 평범한 인간들이 사는 구역과 좀비들이 돌아다니는 구역, 그니까 죽은 땅이라고도 불리는 곳, 그리고 좀비들과 인간들이 섞인 분쟁지역이었다. 분쟁지역은 확실하게 정할 수가 없었다. 정부가 사람들과 좀비가 섞여 있는 걸 알면서도 철망으로 된 벽을 세워서 생긴 지역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강하면 분쟁지역은 늘어나고, 좀비가 이기면 분쟁지역은 줄어들었다. 그래도 나름 양심이 있다고 한 게 군인들을 시민을 구조하기 위해 투입하는 것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딘 윈체스터였다.
이미 군인들은 많이 죽었고, 아니면 탈영병 신세가 되어서라도 안전지역으로 돌아갔는데, 여전히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시민들을 살려라. 이딴 거 말이다. 여기에 더 살아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고 당당하게 들어가기엔 딘도 살아있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다. 게다가 딘은 좀 천성이 좆같은 면이 있어서 섹스와 폭력을 즐긴다 뭐다 해도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좀 이기적이어 져라.
그래서 딘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였다. 겨울이 끝나는 것. 좀비 바이러스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기실 걸어 다니는 좀비들 모조리 다 시체인지라 겨울 끝나서 몸 녹으면 부패 시작해서 끝이라나 뭐라나. 그것도 예상이긴 한데, 꽤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었다. 그러니 이제 2월 지나가고 있으니까, 그놈의 기후변화도 삼사월을 엄동설한으로 만들지는 않으니 곧이면 끝이라는 것이다. 딱 하나 바라는 건, 그래도 봄 되기 전에 떠나고 싶었다. 임무를 해내고자 하는 군인의 마음이었다.
딘은 매일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라고 좀비가 못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이런 시국에 학생증이 있어야 출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실 그런 것이었다면 딘도 못 들어갔을 것이다. 우선 학교에는 식당이나 기숙사 때문에 식량 확보가 용이하고 따뜻하게 잘 수도 있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실험실이나 대학교의 경우 연구실 때문이었다. 딘은 좀비를 사람 없는 곳으로 유인하고 사제폭탄을 던져 죽였다. 처음에야 이런저런 장비가 있었지, 총은 썩 쓸데없는 데다, 수류탄 같은 건 진작에 다 썼다. 그러니까 직접 폭탄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엔 학교가 제격이란 의미이다.
그런 일을 할 때 딘은 대부분 혼자였다. 군인들은 말했다시피 죽거나 도망갔거나,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외에 동료가 생겨도 제 임무가 임무다 보니 다 열심히 탈출시켜줬다. 그렇다 보니 조금 지쳐갔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고. 기껏 학교에 갔다가 매복한, 솔직히 매복을 의도한 건 아니었을 테지만, 좀비를 마주치기까지 했다. 그냥 저도 탈영병 타이틀이나 얻고 영창 갈까 싶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학교에서 사제폭탄이나 만들다가 기숙사에 몰래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했다. 보통 학교는 좀비가 한 번쯤은 쓸고 간 경우가 많았고, 이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길 가는 데마다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시체는 없었다. 간혹 잘려나간 신체 부위 따위는 보여도 말이다. 피가 마른 정도를 보니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니까 사람이 없고, 그만큼 좀비도 별로 없었다. 문 잘 잠그고 쥐 죽은 듯이 자면 들키지 않는다 이 말이었다.
“뭐야?”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인영에 딘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은 해가 채 지지 않아 은은하게 햇빛이 들어왔다. 커다란 남자애 하나가 침대 맡에 앉아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그도 놀랐는지 딘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는 다리를 부여잡고 있었고, 아마 다친 모양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딘도 마찬가지인지라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있는 줄 몰랐네.”
딘이 민망하게 손을 가만두지 못하다가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딘 윈체스터야.”
“샘 웨슨이요.”
샘은 다리를 잡고 있던 것을 놓고 악수를 받았다. 일어서니 생각보다도 키가 컸다. 눈높이가 저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자주 못 봤는데.
딘은 어쩔 줄을 몰랐다. 솔직해지자면,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협력할 사람이 있는 게 좋기도 하고, 다친 다리가 신경 쓰여 떠나지 못하다가 샘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다리 다쳤어?”
“네.”
“밥은 먹었냐?”
그러고 딘은 제 가방에 있는 식량을 나눠주려고 했는데, 우선 점심 겸 저녁은 먹었다고 했다. 식량은 소중하니까, 그리고 또 이 상황이 딘이 바라는 것과는 달리 길어질 수도 있으니 딘은 알겠다 하고 말았다.
“이렇게 있으면 좀비 안 와?”
“방금 나갔다 들어와서 까먹었어요.”
샘은 일어나서 문 바로 옆에 있는 서랍장을 끌었다. 딘은 그제야 샘이 하려는 양을 알고 힘을 보탰다. 서랍장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좀비는 생각보다 굳게 닫힌 문에 힘을 쓰지 않았다. 딘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고, 샘도 알게 된 모양이었다.
“하루만 나도 묵어도 되지?”
“그럼요. 말동무 있으면 저야 좋죠.”
딘은 어색하게 옆 침대에 앉았다. 이인실이어서 다행이었다. 일인실이었으면 꼼짝없이 껴안고 잠들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좀비 사태가 시작한 건 십이월 초였고, 그때는 한창 학생들이 기말고사를 볼 즈음이어서 이불도 있었다. 조금 뜯겨있다는 게 께름칙하기는 했다만 딘이 그동안 다닌 데를 생각하면 가히 호텔 오성급에 견줄 수 있었다.
“다리 많이 다쳤어?”
“아, 뼈는 안 건드려서 낫고 있어요.”
그렇군. 딘은 조금 의아했다. 뼈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어쨌든 과다출혈은 아니니까 나름 움직이기도 하는 것일 텐데, 왜 여기에서 고독사할 것처럼 지내고 있냐 이 말이다. 하기사 생각하면 이 학교는 습격당한 지 얼마 안 됐으니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딘은 생각을 털어냈다.
“딘은 군인이에요?”
“응. 보다시피. 너는 여기 학생?”
“네.”
“공부 잘했겠네.”
그러자 샘이 민망하게 웃었다. 지금은 그게 그렇게 도움은 안 되네요. 그 뒤로는 시덥잖은 대화가 다였다. 가족관계 같은 것이었는데, 둘 다 평범했다. 가족이 있고, 몇 주 전에 통화는 했다만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그러다가 해가 졌는데, 전력이 잘 전달되지 않는 탓에 등도 무의미해서 일찍 둘 다 잠들었다.
딘은 햇빛에 눈을 떴다. 샘이 커튼을 치고 이불 정리를 하고 있었다. 엄청나네. 딘은 쟤도 군대에 들어오면 제법 잘 해내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뜬 지 얼마 안 됐는지 해가 방 깊숙이 들어왔다. 사태가 일어나고 내내 바쁘게 산 딘인데, 어딘가 멍해져서 뭘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평소에 뭐 했더라? 아, 여기저기 쏘다니며 생존자를 찾아다녔지. 딘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샘은 다리를 다쳐서 아직 나가기는 힘들고, 그 외에는 솔직히 제 도움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밥도 잘 챙기고 여기서 잘만 자는데. 그리고 다리만 나으면 언제든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은 체격이라 해야 하나. 그러나 이상하게도 딘은 이 샘이라는 애를 또 마냥 떠날 자신이 없었다.
“넌 평소에 여기서 뭐 하냐?”
“식량 떨어지면 나가서 가져오고, 전화되나 확인하고, 영 할 거 없으면 책이나 읽기도 하고, 운동도 하죠.”
“여기 얼마나 있었는데?”
“일주일 됐을걸요.”
“그전에는?”
그 말을 하자 샘이 잠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있었죠. 좀비 잡고, 사람들이랑 탈출할 계획하고. 어투는 제법 여상했으나, 어딘가 미묘했다. 잠깐의 공백이나. 그러나 딘은 더 묻지 않았다.
“상처는 괜찮아?”
“괜찮아요. 일주일이나 지났으니까.”
그렇군. 딘은 더 할 말도 없고, 할 것도 없고, 세상 이렇게 무료한 시기가 있었나 싶었다. 저 샘이라는 애는 숨기는 게 많았다. 그래서 대화가 영 진전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이러니 새삼 샘은 여기서 심심해서 어떻게 지냈나 싶다. 책 읽고 운동하는 걸로 이 무료함이 해소가 된다고? 딘은 고개를 저으며 침대에 다시 누웠다. 금방 자다 깨 놓고 눈을 감자 또 금세 수마에 빠져들었다.
딘은 꿈을 자주 꾸는 사람은 아니었다.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강했다. 매번 몸이 혹사되니 잠깐만 자도 깊게 든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꿈도 잘 꾸지 않았는데, 설사 꾸더라도 훈련받는 꿈 정도가 전부였다. 일어나면 그것조차 흐릿하니 딱히 의미는 없다. 그러므로 딘이 일어났을 때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꿈에서 좀비와 싸우다가 잡아먹혔다. 이렇게 불길한 꿈을 꾼다고? 딘은 미신 따위를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만, 이런 상황에서 꾸니 영 기분이 찝찝했다. 심지어 그는 사태가 터지고 가장 안전하고 편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꾼 꿈은 그에게 경고하는 듯도 했다. 그래서 그는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났고, 샘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딘은 일어나서 다시 짐을 챙겼다.
“왜 그래요?”
“이러고 있을 수 없어. 나가야 해.”
“무슨 의미예요?”
“평화롭게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거야. 밖에 사람들이 있을 거 아냐.”
딘은 기어이 손을 떨기까지 했다. 샘에게 보이지 않게 제 몸 뒤로 숨겼다. 샘은 당황스러운지 눈을 굴리다가 딘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 나가요. 하루쯤은 더 쉬어도 되잖아요. 내일 같이 나가요. 저 다리도 많이 나았으니까, 저 이제 나가도 돼요.”
“네가 뭐하러 나가.”
“여기서 계속 지낼 수는 없으니까요. 도와줄게요.”
샘의 말이 그렇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딘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같이 나가자는 건지. 게다가 딘은 샘에게 그의 임무를 말해주지도 않았다. 어떻게 다 이해하고 같이 가주겠다는 것인가? 샘은 고작 하루로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또 동시에 체격도 괜찮고 일주일 동안 다친 다리로 혼자 살아남을 정도로 실력 좋은 녀석을 동료로 두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기는 했다. 그리고 샘도 혼자 있는 게 두려울지도 모르고…….
“그래. 내일 나가자. 다리 정말 나은 거 맞지?”
“뼈가 다친 것도 아니니까요.”
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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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되고 샘과 딘은 밖으로 나갔다. 이미 어느 정도의 장비는 딘에게 있었고, 샘의 도움을 받아 학교 연구실에 가서 사제폭탄을 만들었다. 샘은 생각보다 움직임이 가벼웠다. 딘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구할 사람들을 찾았다.
아마 한 차례 나라의 지원이 왔었나 본지 거리에 좀비가 별로 없었다. 가끔씩 국가에서 좀비가 많은 지역에 로봇 따위를 보내 근방을 청소했다. 사람이 없는 게 확실할 경우 미사일을 쏘기도 했다. 처음에는 반대의견이 많았다. 첫째는 건물주들의 반대가 컸다. 그러나 후에 현장을 담은 동영상이 퍼졌고, 이미 건물들이 폐건물이나 마찬가지의 상태인 게 드러나면서 집값이 바닥을 쳤고, 수그러들었다. 미사일을 쏘면 적어도 보상금을 주니 말이다. 또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는데, 자기 가족의 시체라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나 좀비가 된 가족의 시체는 볼 수 없다. 좀비는 이미 시체 상태였고, 그것들은 팔다리가 잘려도 기어코 꿈틀거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반대의견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집 곳곳을 뒤지다가 어린아이 한 명을 찾아냈다. 이름은 루카스였는데, 어떻게 어린아이가 지금까지 이런 데서 버텼는지 알 수가 없어 몸을 확인했다. 물린 자국은 없어 보였다. 옷이 찢어지지도, 피가 묻어있지도 않았다. 애초에 좀비에게 물리면 일 분 내로 좀비가 된다. 그러니 물렸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특히나 어린아이의 경우 몸이 작아 더 빠르게 좀비가 되었다.
“도와준 어른 없니?”
“엄마가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어요. 오늘 아침에.”
그리고 정말 아이의 말대로 곧 그 엄마가 돌아왔다. 이름을 안드레아라고 소개하는 그는 군인과 제법 착해 보이는 대학생이 도와준다니 경계하는 듯했다가 조금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쉽게 풀렸다. 오늘따라 너무 운이 좋다. 딘은 이런 운 좋은 상황을 경계하는 편이었다. 이유 없이 운이 좋은 경우는 없었다.
“오늘이 음, 오늘 무슨 요일이지?”
“수요일이요.”
“금요일에는 주기적으로 구조를 하러 헬리콥터가 옵니다. XX대부속고등학교 옥상에. 이틀만 버티면 구조가 올 거니까,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힘내자고요.”
딘이 말하자 안드레아는 얼굴이 폈다. 이건 처음 사람들을 구조하는 임무를 받은 군인들에게 전해진 정보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은 웬만하면 구조됐거나, 죽었다. 대부분 그랬다. 소식이 퍼질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이 뭉칠 기회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설사 뭉쳤어도 같이 죽었거나, 같이 구조됐거나, 반만 구조됐을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밤이 되고 샘과 딘이 두 시간마다 돌아가며 보초를 서기로 했다. 딘은 손목시계가 있지만, 샘은 없으므로 교대할 때 보초를 서는 사람에게 손목시계를 주기로 했다. 겨우 두 시간 쪽잠을 잔다는 게 힘들기는 했지만, 딘은 이런 경험이 많기도 했고, 샘을 처음 만난 날 오랜만에 푹 잤기 때문에 괜찮았다. 딘의 걱정은 샘이었다. 아무리 장성한 청년이라지만, 공부만 하던 녀석일 것이 분명했다. 공부만 하지 않아도 이런 건 군인이 아니면 적응하기 힘들었다.
딘이 보초를 다 서고 샘을 깨웠다. 툭툭 쳐대는데 쉬이 일어나지를 못했다. 옆에서는 루카스와 안드레아가 자고 있으니 큰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딘이 어깨를 잡고 세게 흔들자 샘이 놀란 듯 벌떡 일어났다.
“아, 미안해요.”
샘은 눈을 비비더니 시간이 많이 지났냐고 물었다. 딘은 고개를 젓고는 제 손목시계를 풀어서 내밀었다. 샘은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래도 그 뒤로는 교대가 제법 수월했다. 샘은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내 뒤척였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보니 얼굴이 영 편치 않아 보였다. 티는 덜 내지만, 딘은 그런 얼굴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딘은 고개를 숙이며 몰래 웃었고, 샘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일이 바로 금요일인지라 지도를 보며 갈 길을 파악해뒀다.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걸어서 20분 거리였는데, 혹시 모르니 미리 정찰을 해두기로 했다. 딘이 나가려고 하니까 샘이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안드레아와 루카스를 지킬 사람도 필요해서 딘이 거절했다.
밖에 나가니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좀비가 어디까지 처리됐는지 알 수 없었다. 실은 별로 없다 하더라도 건물마다 한둘 정도는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처리하기 쉬우니 내일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수월할 것 같았다.
돌아와서 보니 샘이 벽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딘이 보고만 있자 안드레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피곤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안 깨웠어요. 어차피 좀비 하나 정도는 저도 해치울 수 있으니까.”
하긴, 지금까지 루카스를 지키며 버티려면 그럴 만도 했다. 딘은 구태여 샘을 깨우지 않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안드레아에게 좋은 소식을 전했다.
식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두 번 밥을 먹었다. 저녁이 되었고, 통조림이기는 하지만, 샘이 잠에서 영 깨어나지를 않아 딘은 샘을 깨웠다. 내일 안드레아와 루카스를 탈출시켜야 하는데, 전날 고작 한 끼만 먹으면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샘은 그래도 피곤이 가셨는지 한결 나은 얼굴로 멋쩍게 웃으며 일어났다.
샘에게 내일 어떻게 할지 대강 설명을 하고 나니 금방 날이 어두워졌다. 내일 세 시. 아마 세 시일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미리 두 시쯤에 갈 것이지만, 보통 이런 걸 바꾸는 일도 드문 데다, 딘은 불과 이주 전에 사람 한 명을 탈출시켰다. 시각과 장소가 바뀔 리가 없었다.
잘 시간이 되고, 샘과 딘은 또다시 교대로 보초를 섰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요즘 딘은 날짜 개념이랄 게 별로 없어서 요일이나 날짜가 바로 튀어나오지를 않았다. 그저 2월 어느 날이라는 것만 머리에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요즘 날이 풀리는 것 같기는 했다. 옷 안에 땀이 차서 자주 씻지도 못하는데 짜증만 났다. 물은 그래도 나오는 편이지만, 온수는 안 나왔다. 그리고 샴푸 같은 것은 사치여서 비누로 대충 닦아야 하기도 하고. 비누가 많지 않기도 하고. 딘은 가만 생각하다가 그냥 안드레아, 루카스와 함께 떠날까 싶었다. 샘도 설득하면 같이 가줄 것이다. 나름 부상도 입었으니까. 아니, 샘은 이미 떠나기로 했을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제대로 물어보지를 않았다. 당연히 저와 함께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 그랬더라. 저도 모르게 진짜로 제 동료라 생각했던가.
두 시간이 지나고 딘은 샘을 깨웠다. 어제는 잘 깼으니 이번에는 잘 깨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무색하게 샘은 잘 일어나지 못했다. 기억해둬야겠다. 처음에는 잘 못 깨는군. 딘은 어제 했듯이 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샘, 샘! 그러자 샘이 어깨를 잡은 딘의 손목을 잡다가 몇 번 더듬어 딘의 허리를 찾아내고는 꽉 껴안았다. 마치 어린아이 어리광부리듯 말이다.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배 언저리에 부볐다. 씨발. 딘은 저도 모르게 욕을 짓씹었다. 놀란 심장이 쿵쿵거렸다. 저를 안은 팔에는 힘이 들어가진 않았다. 그러나 딘은 그런 샘을 바로 밀어내지도 못했다. 그저, 딘은 그 순간에 샘이란 녀석의 역사를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딘은 그에 대해 알지 못했다.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애인은 있었는지, 친한 사람들에게 성격이 어떤지 같은 것에 대해 말이다.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게, 보아하니 겉은 애어른인 데에 반해 애교가 있는 성격일지도 모르겠다. 잠이 많아서 공부를 할 때 방해가 됐을 수도 있다. 아니다. 그래도 아침잠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으니 또 알 수는 없다. 군복을 뚫고 몸에서 나는 후끈한 열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너무나 생생해서 딘은 굳어버렸다.
그간 딘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개인사를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연이 하나같이 절절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 그런 이야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딨을까.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내뱉기는 힘들고, 딘도 마찬가지였다. 듣기도 힘들고, 들어서 떠오르는 제 역사가 버거웠다. 수많은 전쟁에서 잃은 동료들과 연락되지 않는 가족, 그들이 지내던 곳이 좀비들이 가장 초기에 점령한 곳이었음을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들의 시체도, 제대로 된 묘도 없었고, 제대로 된 장례 하나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딘은 제 마음에 묻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딘에게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이 버거웠다. 그저 대충 예상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딘은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겪고 있는 지금보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과거가 더욱 현실을 실감케 한다는 것을.
딘은 겨우 샘을 떼어냈다. 그리고 다시 샘을 흔들었다. 그렇게 일어나지를 않더니 이번에는 잘만 일어났다. 딘은 아무 말 없이 제 시계를 건네고, 샘이 자던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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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금요일이 찾아왔고, 안드레아는 샘과 딘에게 떠날 것이냐고 물었다. 딘은 고개를 저었고, 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안드레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딘은 샘을 힐끗 보고 다 같이 통조림을 간단히 먹었다.
잠시 지내는 동안 짐을 풀었기 때문에 다시 짐을 쌌고, 샘은 그 사이에 혹시 통신이 되는지 확인했다. 가족에게 연락하고 싶어서 그러나 잠시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나가기 전에 각자 무기를 챙겼다. 샘은 처음 나올 때부터 야구방망이 하나였고, 딘은 총과 사제폭탄이 있었다. 그리고 안드레아는, 어떻게 아이를 챙겨야 하는 민간인이 지금까지 구조를 기다릴 수 있었는지 깨달은 순간이었는데, 화염방사기가 있었다. 좀비에게 효과적인 무기였다. 방망이나 총은 시간 끌기용밖에 되지 않고, 사제폭탄은 좀비 몇에게 쓰기에는 아까운 데다, 좀비가 듣고 모일 가능성이 있었다. 안드레아는 떠날 때 그들에게 화염방사기를 주기로 약속했다.
밖에 나가니 여전히 거리에 사람도 좀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긴장감을 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샘이 루카스를 들고 이동했다. 고등학교가 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딘은 시계를 봤다. 두 시 십 분이었다.
허무할 정도로 고등학교에 금방 도착하고, 건물 안에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좀비가 있을 수 있었다. 게다가 탁 트여 있지도 않으니 더 경계해야 했다.
가다가 복도를 떠도는 좀비 하나를 보고 샘이 방망이로 쳐내 창문 밖으로 밀어냈다. 수월하다. 딘은 긴장감에 손에 땀이 났다. 수월할수록 무섭다.
금방 옥상에 도착했다. 두 시 삼십 분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널널했다. 조금은 지루할 정도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정해진 건 세 시이긴 하지만, 그간 경험으로 조금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기도 한다는 걸 안다는 점이었다. 한 십 분은 일찍 오면 좋겠는데. 딘은 그런 생각을 했다.
“고마워요.”
안드레아가 샘과 딘에게 말했다.
“아직 헬기 도착도 안 했는데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예요.”
딘이 장난스레 하는 말에 안드레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루카스에게 인사를 시켰다.
“나중에 밥 한번 먹어요. 같이 와야 해요.”
안드레아가 샘을 보며 말했다. 샘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헬리콥터가 오는 게 보였다. 안드레아는 확인하고 딘에게 화염방사기를 건네주었다. 요란한 소리가 가까워졌고, 바람이 불어 앞머리가 뒤로 넘겨졌다. 안전하게 뒷걸음질을 해서 물러났고, 딘은 문득 샘을 봤다.
“안 가도 되냐?”
샘은 딘을 보지도 않고, 그 헬리콥터만 보다가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보조개가 들어갔다. 안 가도 돼요. 시끄러워서는 그 목소리를 어떻게 들으라고 그렇게 작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충 입 모양으로, 웅웅 울리는 그 소리로, 제 심장도 그에 따라 쿵쿵거렸기에.
안드레아와 루카스가 올라타고, 샘과 딘은 아래에서 인사를 했다. 시간을 보니 세 시 오 분 전이었다. 갈지 말지 고민하는데, 샘이 말했다.
“아직 가면 안 돼요.”
“왜?”
“방금 건물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왔어요.”
조종사에게 딘이 말을 전했고, 그들은 기다리기로 했다. 딘은 계속 시계를 봤다. 곧 세 시가 될 것이다. 헬리콥터가 온 지 십 분이 다 되어갔다. 헬리콥터의 소리는 너무 크다. 그래서 좀비가 오기 쉽다. 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세 시가 넘었다. 그 사이에 옥상에 오기가 그렇게 힘들까? 오 분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오는 길에 좀비를 하나 해치웠다. 아니지. 불타는 좀비가 건물에서 추락했고, 헬리콥터가 옥상에 도착했다. 좀비는 지능이 부족했지만, 그만큼 자극에 예민했다. 그리고 너무 충분한 소리 자극이었다. 올라오던 사람들이 숨어 있다가 몰려든 좀비들 때문에 막힌 것일지도 몰랐다.
딘이 샘을 봤다. 샘도 이상한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딘은 조종사에게 가서 말했다.
“십 분이 지나도 안 오면 출발해.”
딘은 샘과 함께 옥상 문을 열고 내려갔다. 숨을 죽이고 가는데, 아래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그렇게 모였나? 딘이 계단을 다 내려가지 않고 몰래 아래를 봤다. 좀비를 처리하는 데에 소리가 덜 날 수는 없었다. 서둘러 사람들을 찾아 데리고 가거나 모아서 죽이는 수밖에. 그렇다면 좀비를 최대한 밖으로 유인해야 했다. 좀비를 한꺼번에 처리하려면 사제폭탄을 써야 하는데, 사제폭탄을 건물 안에서 쓸 수 없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내려가면서 사람들을 찾았다. 화장실에 들어가자 숨어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참 창의력 없지.
“샘, 네가 사람들 옥상에 데려다 줘. 내가 좀비들 유인하고 있을게.”
“위험해요.”
“나 군인이야. 좀비들 그렇게 빠르지도 않고. 보내고 나면 운동장에 와.”
딘이 샘의 어깨를 툭 쳤다. 샘이 딘을 빤히 보다가 고집을 꺾지 못하고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딘은 샘과 헤어지자마자 한 층 내려가 귀마개를 하고 총을 쐈다. 그리고 다시 한 층 내려가 총을 쐈다. 헬리콥터 소리가 크기는 하지만, 소음기가 없는 총도 만만치 않았다.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데 좀비를 만났고, 딘은 화염방사기를 겨눴다.
생각보다 좀비가 많이 모인 모양이었는지, 건물을 나가면서 좀비 셋을 봤다. 본 것만 셋이었으니 안에 있는 좀비는 더 많을지도 몰랐다. 샘이 나오는 것을 걱정할 즈음, 헬리콥터가 떠나는 게 보였다. 시간은 세 시 십오 분이었다. 딘은 총을 한 발 더 쐈다. 그 사이에 좀비 하나가 밖에 나왔다. 하나는 충분하지 않았다. 적어도 다섯은 돼야 사제폭탄을 쓰는 의미가 있으니까. 폭탄을 쓰면 좀비가 또 몰릴 텐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교문을 보니 밖에서 좀비가 또 오고 있었다. 이참에 잘 됐다고 생각하며, 소리를 질러 좀비를 유인했다. 처음부터 좀비를 처리할 작정이었다면 트랩이라도 놨을 텐데. 딘은 후회하며 뛰었다.
딘은 건물에 들어가 숨었다. 밖에 모인 좀비를 보는데, 생각보다 많다. 아무리 청소해봤자 좀비가 너무 많았다. 딘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토기에 입을 막았다. 딘은 시신을 많이 봤다. 그러나 몸이 부패하기 시작하는 시체는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좀비들도 자주 보기는 했지만, 날이 풀리기는 하나 보다. 확실히 저런 건 드물었다. 심지어 게 중에는 다리가 없어 기어 다니는 것도 있었는데, 좋은 볼거리는 아니었다.
샘이 오기 전에 얼른 처리해야지. 딘은 다시 총을 쏴 좀비들이 몰려드는 것을 봤고, 좀비들이 열 구具 정도 모였을 때, 사제폭탄을 던졌다. 하나를 더 던지니 거의 처리가 되었고, 그러고도 움직이는 것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쐈다. 긴장이 풀려 한숨을 내쉬는데, 갑자기 뒤에서 저를 안는 감각이 느껴졌다. 몸이 커다래서 저를 감싸 안는 게, 샘이었다.
“야, 우리가 아무리 전우라지만, 갑자기 이렇게 껴안을 사이는,”
그래. 아니었다. 그렇다면 껴안을 이유가 뭐가 있겠냐 이 말이다. 샘은 딘에게서 떨어져서는 딘의 화염방사기를 잡은 손 위에 제 손을 올리고 그의 팔을 물은 좀비를 방망이로 밀어내더니 화염방사기로 해치웠다. 불에 타고 있는 그것을 샘은 혹시 몰라 몇 번이고 팼다. 깡깡 소리를 내며 방망이가 바닥에 부딪혔고, 그것의 온 피부가 다 타들어 가서 알 수 없는 몸뚱어리만 타닥 소리를 내며 겉면의 재를 떨어뜨릴 때, 샘은 딘을 돌아봤다. 딘은 제 주머니 속의 총을 잡았다. 죽여야 하나? 샘의 팔에 분명히 잇자국이 남아 있었다. 딘은 시계를 봤다. 세 시 이십 분이었다. 일 분이 지나기 전에 죽여야 했다. 샘을 위해서라면 죽이는 게 맞았다. 저런 좀비가 되어 기어 다니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딘에게 총은 여러 용도를 해주지만, 이번 좀비 사태를 겪으며 깨달았다. 이건 사람을 죽이는 용도였다. 좀비가 아니라 적어도 사람으로서 죽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건 딘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딘은 항상 총을 한 발 남겼다. 총알을 다 쓰는 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급하게 자신을 죽일 때, 제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고민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도록.
손이 떨렸다. 샘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울 때, 샘이 다시 한 번, 딘을 껴안았다. 아직 몸이 뜨거웠다. 좀비는 몸이 차갑다. 시체니까. 그러나 샘은 피가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몸이 뜨거웠다. 딘에게 샘은 그렇게나 생생했다. 어제 알아서는 안 됐다. 이 녀석이 얼마나 입체적인 인간인지 말이다. 얘의 한 면만 보고 평면적인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넘겨야 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떤 인물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가 살았었고, 심장이 뛰고, 활기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딘은 샘을 죽일 수 없다. 죽일 수 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딘은 제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안 죽여도 돼요.”
그리고 샘은 그런 말을 했다. 온몸에 힘이 풀렸고, 시간을 보니 세 시 이십삼 분이었다. 좀비라면 쓰러지는 사람의 허리를 잡아주지 않을 것이다. 딘은 울고 싶어졌다.
딘은 샘을 데리고 그들이 처음 봤던 대학교의 기숙사에 데리고 갔다. 그들이 있던 고등학교가 이 대학교의 부속인지라, 딘은 계획을 짤 때부터, 그리고 샘이 같이 남겠다고 할 때부터 이 기숙사에 돌아와야지, 싶었다. 가까워서도 있고, 딘이 그간 지냈던 곳 중 가장 시설이 좋기도 해서였다.
아무 방에나 들어가서 문을 제대로 막고 딘은 침대에 걸터앉은 샘의 웃옷을 벗겼다. 티셔츠만 남자 왼팔에 선명한 잇자국과 그 아래로 흐르는 피가 보였다. 딘은 가방에서 솜과 소독약과 낚싯바늘, 치실을 꺼냈다. 지난번에 학교 보건실을 털면서 잔뜩 챙겨둔 것이었다. 솜을 소독약으로 적시고 환부를 닦으니 샘이 앓는 소리를 냈다. 오른손으로 제 다리를 꽉 쥐는데, 손끝이 하얘질 정도였다. 딘은 어설픈 솜씨로 상처를 꼬맸다. 그는 의무병은 아니었으나, 원체 오지에 많이 가서 응급치료는 할 수 있었다. 흉터는 잘 남겠지만, 산 게 어디인가.
상처를 다 치료한 다음, 딘은 의자에 앉아 샘을 봤다. 그리고 샘과 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딘은 물을 게 많았고,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정리하고 있었다.
“음, 원래 같이 다니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한참 정리하는데 운을 떼서, 딘은 샘의 말을 듣기로 했다.
“같이 탈출하기로 했었어요. 즉석에서 모인 것치고는 생각보다 합이 좋았고요. 그 고등학교에 오는 줄 알았다면 이미 떠날 수 있었겠지만, 그걸 몰라서 안전지역 가르는 철망까지 찾아갔었죠. 그런데 숨어있던 좀비한테 물렸어요. 그래서 저는 남기로 했고, 죽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변화가 없었고, 어쩔 줄을 몰라서 그냥 멍하니 기숙사까지 왔어요. 일주일 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딘을 본 거죠.”
그걸 여태 왜 안 말해준 거야?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있다는 건 딘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극히 드물지만 말이다. 그래서 초반에 그런 사람들을 통해 백신을 만들려고도 했지만, 아직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비밀이라고 말을 안 해줬나. 딘은 불만스러웠지만, 꾹 참고 샘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부터 말 안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입이 쉽게 안 떨어지더라고요.”
샘은 바지를 걷었다. 무릎까지 올라간 것은 팔에 있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흉을 보여줬다.
“딘이 아니었으면 전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게 어떤 방식이든.”
샘은 딘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딘은 놀라서 움찔 손을 뿌리칠 뻔했다.
“죽기를 각오했는데, 죽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을 때, 마냥 기쁘지는 않았어요. 또 살아남기 위해 살아야 하니까. 그것도 혼자서. 그래서 그날 일을 말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샘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딘이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기실 딘도 뼈저리게 느낀 것들이니까.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막막함. 그래서 샘이 안 가도 된다고 말했을 때, 저도 모르게 얼마나 기뻤던가. 딘은 샘의 성한 어깨를 잡고 안았다. 샘이 너무 외로워 보인 탓이었다. 샘의 숨결이 귓가에 느껴졌다. 따뜻한 것이 찬 목까지 후끈 열을 뻗치게 했다.
샘과 딘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사람이었다. 살고 싶으면서도 남을 살리기 위해 목숨 하나쯤은 던질 수 있는 사람. 그들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하나였다. 딘은 목숨 하나쯤은 던질 수 있지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샘은 살고 싶지만, 목숨 하나쯤은 던질 수 있었다. 고작 그 작은 차이가 샘과 딘을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샘은 그렇게 위태로워 보이지 않은 것이다. 딘은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벼랑 끝에 선 듯 불안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샘과 있을 때 딘은 제법 안정적인 이틀을 보냈다. 그 악몽 하나 빼고. 딘은 눈치채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는 생존 욕구보다 이타심이 앞서니까. 그렇기에 죽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그를 근본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딘이 샘을 구해야 했다. 안 그러면 샘은 몇 번이고 죽을 위험에 처할 것이고, 결국 운이 다해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면 제가 안은 이 몸에 온기가 사라지고, 힘이 빠져나가고, 어리광을 부리며 칭얼대던 소리가 사그라들 것이다. 딘은 제가 감히 그걸 버틸 수 있으리라 단언하지 못했다.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샘은 그에게 너무 많이 스며들었으니까. 그러므로 딘은 스스로 맹세했다. 봄이 될 때까지 그와 살아남겠다고. 봄이 되어서 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그가 죽게 두지 않겠다고.
서서히 샘이 제게서 떨어졌고, 딘은 샘을 봤고, 샘도 딘을 봤다. 날이 지는지라 방 안에 해가 깊이 들어왔다. 샘의 눈이 그로 인해 빛났다. 그 안에 소용돌이치듯, 여러 색이 뒤섞여 있었다. 딘은 한참 동안 샘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샘의 얼굴이 다가왔다. 손이 떨렸고, 숨이 가빴다. 거친 입술이 제 입술 바로 옆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샘도 제게 약속을 하듯이. 그 짧은 접촉에도 딘은 놀라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 우스운 맹세와 함께 제 평생을 그에게 걸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